한 증류소서 만든 싱글몰트, 블렌디드보다 고급 술일까?
국내에서 위스키는 수십 년 동안 ‘고급술’ 혹은 ‘아저씨들이나 마시는 술’이었다. 이마저 접대문화가 바뀌고, ‘즐기는’ 음주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위스키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까지 8년째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죽어가는 것 같았던 시장의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위스키 소비가 생기기 시작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바’를 중심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고급술을 즐기겠다고 나선 30~40대 직장인이 늘고 있다. 35도의 저도 위스키 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제조방식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위스키를 좀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서울 청담동 르챔버나 앨리스바는 ‘술 좀 아는’ 30대 직장인 여성과 ‘트렌드 좀 안다’는 남성들에겐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바다. 25mL 한 잔에 3만원에 가까운 비싼 가격이지만 주말뿐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2010년 10여 곳에 불과하던 고급 위스키바는 서울에만 200여 곳이 넘을 정도로 빠르게 늘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아빠가 즐겼던, 전 세계에서 팔리는 위스키의 90%를 차지하는 위스키는 싱글몰트가 아닌 블렌디드 위스키다. 윈저, 조니 워커, 발렌타인, 임페리얼 등 언젠가 한 번 들어본 브랜드라면 대부분 블렌디드에 속한다.

두 위스키의 차이는 원료와 제조방식이다. 원재료가 물과 맥아(보리를 싹틔운 것)로 이뤄졌으면 ‘몰트 위스키’, 맥아, 호밀, 밀,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이 혼합됐으면 ‘그레인 위스키’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와 그레인 위스키가 적당한 비율로 혼합된 것이다. ‘싱글’이란 말은 증류소 숫자를 나타낸다. 위스키 원액을 생산한 증류소가 한 곳이면 앞에 싱글을 붙인다. 즉 싱글몰트는 한 곳의 증류소에서 100% 맥아로만 증류한 원액으로 만든 위스키다. 그래서 비싸다.

싱글몰트는 지역과 증류소의 특성이 반영돼 개성이 뚜렷하다. 맥캘란, 글렌리벳, 글렌피딕, 발베니, 탈리스커, 싱글톤 등 세계적으로 500여 종이 있다. 반면 블렌디드 위스키의 종류는 수십여 종에 불과하다. 증류소 생산량의 10~20%로만 만들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어 소비자들은 싱글몰트를 ‘좋은 술’로 인식하고 있다.

싱글몰트와 블렌디드 위스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마스터블렌더로 불리는 위스키 전문가들이 수십 가지 종류의 원액을 섞는 블렌딩 과정을 거친다. 숙성 후 캐릭터가 강해진 원액을 선택하고 섞으면서 균형 있는 맛을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블렌디드를 대중적인 하이네켄에, 싱글몰트를 개성이 뚜렷한 수제맥주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