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내년도 16.4%의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협력업체 재무현황 파악에 나섰다. 과도한 인건비 부담으로 1, 2, 3차 협력업체들이 연쇄적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해놓은 협력생태계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주요 대기업들은 내부 검토를 거쳐 단가 인상 요인이 있다고 인정되는 기업에는 내년 초부터 납품단가를 올려준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 인상 '고통 분담' … 대기업, 협력사 납품가 올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400여 개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폭을 전수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 관계자는 “협력업체와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단가 인상이 필요한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1차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를 중심으로 협력사의 전반적인 재무상황과 비용 상승 요인을 조사하고 있다. 특히 2, 3차 협력업체에 대한 1차 협력사의 단가 인상이 가능하려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성회 한 관계자는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업이익률 1~2%로 근근이 연명해 온 영세기업들은 바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우리) 단가를 올려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2, 3차 협력업체의 부품 가격을 올려줘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는 나름의 기준을 갖고 합리적인 선에서 단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현대자동차와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00억원의 ‘2·3차 협력사 전용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한 현대·기아자동차는 이 기금을 발판으로 1-2-3차로 이어지는 부품 생태계를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3차 협력업체 중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채용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의 내년 인건비는 올해 대비 30%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1차 협력업체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도 구매비용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협력업체의 고통은 생산 차질과 품질 하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납품단가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대 그룹의 주력 기업이 이처럼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다른 계열사도 구매전략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 기업은 늦어도 다음달까지 협력업체의 비용증가 요인을 파악해 오는 11월까지는 납품단가 인상 대상 기업과 품목, 인상폭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모든 협력회사 및 품목에 대한 일괄 인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완제품에 대한 기여도와 기술력, 원자재 가격 추이 등의 종합적 검토를 거쳐 선별적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과 별개로 중소 협력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 비중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기계 부품 관련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즘 중소 기업인이 3명 이상 모이면 하는 얘기가 베트남이나 미얀마에 공장을 짓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산·창원·전주·김해=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