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요 은행에 벤처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은행들이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유망 벤처·중소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4대 은행은 벤처 투자를 확대하기로 하고 방안을 마련 중이다. 4대 은행이 검토 중인 벤처 투자 규모는 5조원 수준이다.
금융위원회 "벤처 투자·대출 확대" 요청…은행, 5조 검토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4대 은행의 은행장들에게 벤처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며 “새 정부의 금융정책 과제인 ‘생산적 금융’에 대한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24일 말했다. 금융위는 벤처·중소기업들이 필요 자금의 대부분을 정책자금과 은행 대출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해 주요 은행에 이 같은 협조 요청을 보냈다.

◆벤처 투자 확대 왜?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3년 487조원이던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 610조원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국책은행,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정책자금이다. 민간 은행들의 벤처·혁신기업 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대출 방식도 보수적이다. 대다수 은행들은 담보(땅, 공장 등)와 재무제표를 따지는 엄격한 대출심사를 통과해야 벤처·중소기업에 대출해준다. 2014년 금융위가 대출심사 때 기술력을 평가하는 ‘기술금융’을 도입했지만 아직까지는 미흡한 편이다.

금융위는 은행들이 벤처·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보수적 심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대형 은행들이 벤처캐피털 등에 자금을 대고, 유망한 벤처·혁신기업 발굴은 벤처캐피털이 담당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태펀드 등을 통해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유망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은행들은 일단 호응하는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혁신형 중소·벤처기업 투자를 확대한다는 내용의 ‘더 큰 금융’ 프로젝트를 최근 발표했다.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을 활용해 약 2조원의 대출 지원 및 벤처기업 지분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이르면 이번주 모태펀드를 통해 벤처기업 지분투자 등에 2020년까지 1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도 비슷한 지원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확대 인센티브도 추진

금융위는 추가적인 ‘생산적 금융’ 실행방안도 오는 11월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위가 검토 중인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 등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높이는 방안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높은 고위험 가계대출을 많이 하는 은행일수록 BIS비율이 낮아져, 결과적으로 가계대출을 알아서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예대율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대율은 총대출을 총예금으로 나눈 비율이다. 지금은 가계대출이나 기업대출에 관계없이 은행들은 예대율이 10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금융위는 앞으로는 총대출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 가중치를 높이고, 기업대출 가중치는 낮추는 걸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똑같은 100억원의 대출이더라도 가계대출은 110억원으로 반영하고, 기업대출은 90억원으로 반영하는 식이다. 가계대출을 무한정 늘릴 경우 예대율이 100%를 넘기 때문에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자제하거나 기업대출을 더 늘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게 금융위 생각이다.

이태명/안상미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