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반등하는 MLCC…국내 유일 생산 삼성전기 '호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한국 제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통틀어 가장 작다. 완성품의 두께는 머리카락과 같은 0.3㎜로, 이 안에 최대 500층의 금속 막이 쌓여 있다. 반도체보다 크기가 작다 보니 와인잔 하나에 3억원어치가 들어간다. 외부에서 공급된 전기를 머금고 있다가 필요한 곳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데 TV부터 스마트폰, 전기차까지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에는 꼭 있어야 한다. 이 MLCC 가격이 최근 반등했다. 가격 하락세가 시작된 2002년 이래 15년 만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MLCC를 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의 25%를 점유한 삼성전기의 실적 상승이 점쳐진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10일 “삼성전기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의 MLCC업체들이 지난 7월부터 일제히 MLCC 단가 인상에 나섰다”며 “일부 품목은 이미 인상된 가격에 공급되는 가운데 MLCC 평균 가격은 연말에 작년 대비 15%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MLCC 가격은 2002년부터 매년 10~15% 떨어져왔다. 2002년 개당 35원이던 휴대폰용 MLCC 가격은 지난해 5원 안팎까지 하락했다. 휴대폰 보급과 전자제품의 디지털화로 MLCC 수요가 크게 뛰었지만 일본의 무라타와 다이요유덴은 물론 대만 업체까지 증설에 나서면서 공급량 증가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MLCC 가격이 떨어지면서 삼성전기도 어려움을 겪었다. 20% 넘던 MLCC 사업 영업이익률이 10% 안팎으로 떨어지며 인쇄회로기판(PCB) 등의 손실을 메우는 데 급급했다. 2010년부터 시장 성장도 정체에 빠지면서 ‘엔저(일본 엔화가치 하락)’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이 2013년부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삼성전기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돌파구는 예상치 못하던 곳에서 열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개발과 보급이 속도를 내며 MLCC 수요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에 600개 정도 들어가는 MLCC는 자동차엔 3000개, 전기차에는 1만2000개가 들어간다. 가격도 자동차용이 스마트폰용보다 네 배 가까이 비싸다. 8조원을 밑도는 세계 MLCC 시장 규모가 10년 안에 20조원 규모로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 시장을 겨냥해 무라타 등 일본 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전장(電裝)용으로 전환하면서 스마트폰과 TV 등 IT용 MLCC 시장에서는 품귀현상이 나타나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올해 3월 출시돼 세계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닌텐도 게임기 ‘스위치’의 공급 확대가 MLCC 부족으로 미뤄지는 등 IT 제품 생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주력 산업인 MLCC 시황 호전으로 삼성전기의 실적 개선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1000억원대 초반이던 MLCC 관련 영업이익은 올해 2000억원대 중반까지 늘고 내년에는 4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