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사진)는 "수입맥주와의 역차별적 주세법이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맥주는 지난달 1일 첫 제품인 '제주 위트 에일'을 내놓고 제주도 내 유통을 시작했다. ◎한경닷컴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사진)는 "수입맥주와의 역차별적 주세법이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맥주는 지난달 1일 첫 제품인 '제주 위트 에일'을 내놓고 제주도 내 유통을 시작했다. ◎한경닷컴
"現주세법, 국내 수제맥주 시장 성장 방해"
"양조장 고용 및 지역경제 활성화 역할 커"
"수출 목표…관광객 및 제주도민 먼저 인정받아야"


"수제맥주 사업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주세법의 역차별입니다. 글로벌 맥주회사인 AB인베브가 오비맥주(국내 시장점유율 약 60%)를 인수하면서 국내 맥주시장의 한 축이 외국으로 넘어갔고, 최근 수입맥주 시장이 빠르게 크면서 4조원 규모의 국내 맥주시장의 75%가 사실상 외국(계) 맥주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세법은 이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고요."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사진·38)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5년 전부터 국내에서 수제맥주 사업을 하기 위해 미국, 유럽과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던 그에겐 국내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이 성장하기 힘든 구조의 주세법이 가장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국내 주세법은 알코올도수가 아니라 완제품 출고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다. 주정, 재료, 병, 포장재, 광고비까지 다 포함해 세금을 매긴다. 개성 있는 맥주 맛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써야 하는 수제맥주 업체들이 원료에 마음껏 투자할 수 없는 이유다. 재료비가 올라가면 세금도 같이 오른다.

반면 수입맥주의 세금은 간단하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에 세금을 부과한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실제 얼마에 사 왔는지 알기 어렵다. 신고가를 낮게 부를수록 세금을 덜 낼 수 있고, 이익을 더 낼 수 있다.

한경닷컴이 지난 1일 제주 금능농공단지에 있는 제주맥주 양조장에서 문 대표를 직접 만났다. 5년간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첫 제품 '제주 위트 에일'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제주 상수원(물)과 감귤을 재료로 흑돼지구이와 고등어회 등과 잘 어울리는 밀맥주다.

이제 막 태동기를 맞이하고 있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을 벌써부터 가로막고 있는 건 주세법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유통망 및 세금 감면 혜택 확대 등 일부 수제맥주('하우스맥주') 규제를 완화했지만 여전히 뿌리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문 대표는 "원가가 오르면 세금도 같이 올라가는 구조 때문에 수입맥주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가 없다"며 "수제맥주 업체들이 제조기업으로서 고용 등의 역할도 하는데 이 같은 비용도 맥주 원가에 반영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도 1990년대 수제맥주 시장이 크게 성장하던 당시 주세 감면 혜택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단위면적당 고용창출수가 대형 주류제조사보다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며 "수제맥주 산업이 발전하면 고용이 늘고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미국)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이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 유명 수제맥주 '사무엘 아담스'를 통해 지난해 약 9억7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미국의 보스턴비어컴퍼니는 총 직원수 1505명에 지난해에만 보스턴 지역에서 209명의 신규 고용창출을 했다.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한 달에 1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가 돼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는 역할을 한다.

문 대표는 수제맥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정체성'을 꼽았다. 특히 국내 수제맥주 시장처럼 태동기에 서 있는 때일수록 확실한 콘셉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수제맥주에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가 관광 인프라는 우수하지만 제조업을 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곳은 아니다"라면서도 "세계 어디에도 내놔도 자랑스러운 자연환경과 특산물 등이 존재해 어느 곳보다 수제맥주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좋은 곳이 제주"라고 말했다.

제주맥주가 지난달 1일 내놓은 밀맥주 '제주 위트 에일'도 현재 제주도 내에서만 유통·판매를 하면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브랜드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제주도에 오는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 대표는 "제주맥주가 추구하는 것이 '수제맥주의 대중화'이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접 양조장에 찾아와서 맛 보길 원하는 관광객과 제주도 안에서 살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래야 브랜드의 원천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제주맥주는 미국 뉴욕의 1등 수제맥주 업체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회사다. 실제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을 원하는 과정에서 주의 깊게 봤던 곳이 제주도다. 2012년 문 대표가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제주에 양조장을 건립하는 논의를 시작해 출자까지 이끌어냈다.

제주맥주는 밀맥주인 '제주 위트 에일'에 이어 라거맥주와 또 다른 에일맥주도 준비 중이다.

문 대표는 "국내 맥주시장은 여전히 라거맥주가 주류고 아직 수제맥주를 마셔보지 못한 소비자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 그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수제 라거맥주를 개발하고 있다"며 "제주 위트 에일 외에도 또 다른 콘셉트를 갖고 있는 몇 가지 다른 에일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의 최종 목표는 제주맥주의 수출이다. 글로벌 수제맥주 업체들이 탄탄한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조단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제주가 충분히 그럴 만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주에서 수제맥주를 만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혜 자원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며 "국내에서 인정받으면 소비자들이 오로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제주를 찾는 일도 벌어질 테고, 그렇게 되면 한국을 대표하는 수제맥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