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두 달 만에 조세개혁 방향을 공개했다. 원칙은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다. 이를 위해 ‘부자 증세-서민 감세’를 펴겠다는 방향도 공식화했다.

다만 조세개혁은 단기·중장기 과제로 나눠 ‘두 갈래’로 접근하기로 했다. 우선 상속·증여세 공제 축소, 고소득자·대기업 실효세율 인상 등은 속전속결로 추진할 방침이다. 새 정부 정책 방향에 부합하면서 여론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납세자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 법인세 인상, 경유세 인상 등 ‘민감한’ 과제는 시간을 갖고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29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조세개혁 방향’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조세·재정 개혁과제들은 논의기구에서 토론과 합의를 거쳐 내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공식화했다. 겉으론 국정기획위가 사회적 합의를 내세웠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속세 공제 축소는 올해…법인세·부동산세 개편은 내년 이후로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

단기 과제는 오는 7월 말 기획재정부가 발표 예정인 세법개정안에 대거 포함될 전망이다. 주로 고소득자·대기업의 실효세율을 올리는 정책이 들어가는 게 유력하다. 국민 다수가 아니라 일부 계층 및 대기업이 대상이어서 조세 저항이 비교적 작기 때문이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이날 “올해는 큰 폭의 세법 개정 없이 최소한의 개혁만으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상속·증여세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상속·증여세 인상’을 공약했다. 방식은 명목세율 인상보단 자진신고 세액공제 축소 등 실효세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은 상속이 이뤄진 지 6개월 이내, 증여가 이뤄진 지 3개월 이내에 자진신고하면 내야 할 상속세나 증여세를 7% 깎아준다. 정부는 공제율을 3%로 낮추거나 아예 공제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기업 비과세·감면 축소도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정부는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환경보전시설 및 에너지절약시설 투자 세액공제 등 대기업의 R&D·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속·증여세의 일감몰아주기 과세 적용 요건을 넓혀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세법개정안에 들어가는 게 유력하다.

◆서민 세제지원 강화

올해 세법개정안엔 서민 세제 지원 방안도 포함된다. 월세 세액공제율 확대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연 총급여 7000만원 이하 근로자에게 75만원 한도로 월세액의 10%를 세액공제해주고 있다. 정부는 공제율을 12%까지 올리는 것을 고심 중이다. 2015년 기준 20만 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이 밖에 근로자 임금을 기업 평균보다 더 늘린 중소기업에 세제지원 확대,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업을 재개하거나 취업할 때 소액체납을 한시적으로 면제해주고 영세 음식점에 의제매입세액공제(식재료 구입비에 대해 부가가치세 감면)를 확대해주는 방안도 담길 예정이다.

◆민감한 과제는 내년 이후로

국정기획위는 민감한 조세 정책 과제는 대부분 중장기 과제로 넘길 방침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기획위는 세제 전문가와 각계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인사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 조세개혁 과제를 논의할 것이란 계획을 공개했다. 중장기 과제론 △법인세율 명목세율 인상 △경유 등 수송용 에너지 세제 개편 △면세자 축소 △부동산 보유세 현실화 △주세 종량세 전환(소주 가격 인상) 등이 꼽혔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위원회 논의를 시작해 내년에 로드맵과 추진 방안을 담은 개혁보고서를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치권과 관가 안팎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조세저항 파동을 겪은 점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