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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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만의 한 부호가 30억대만달러(약 1110억원)를 들여 ‘아시아판 노벨상’을 제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당(唐)상(賞) 재단’을 세웠다. 재단 이름은 문화·과학 분야 연구가 활발했던 중국 당나라 국명에서 따왔다. 이 상은 국적에 관계없이 생물약제학·지속가능한 개발·중국학·법규 등 네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를 이끈 이들에게 격년으로 수여되고 있다. 상금은 5000만대만달러(약 18억원)다. 기존 노벨상 상금인 120만달러(약 13억원)보다 많다. 상을 만든 주인공은 대만 룬타이그룹의 인옌량(尹衍梁·65) 회장이다. 룬타이그룹은 건설사, 보험사, 유통업체 등을 거느리고 있다.

싸움만 하던 문제아

인 회장은 소위 ‘금수저’다. 그의 아버지 인수톈(尹書田)은 1943년 중국 상하이에 면직공장을 지었다. 2년 뒤 상하이에서 대만으로 공장을 옮겨 크게 성공했다. 인수톈은 대만에서 ‘체크무늬 천의 전문가’, 청바지 천으로 쓰이는 ‘데님의 왕’으로 불렸다.

인 회장은 어릴 적 싸움만 하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부유한 부모를 둔 그를 모두가 문제아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수학 선생님만은 달랐다. 그를 믿어주고 뒤처진 공부도 가르쳐줬다. 어느 날 그는 싸움을 하던 중 크게 다쳤다. 선생님은 싸움에 휘말린 그를 구해내 상처를 치료해줬다. 학교에도 알리지 않았다.

인 회장은 “수학 선생님은 나를 묵묵히 감싸주고 공부 재미를 알려준 분”이라며 “어른이 되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매일 영어 단어 세 개씩을 선생님과 함께 외우면서 인 회장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비록 꼴찌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토목 분야에서 165개 특허를 보유한 엔지니어가 됐다.

199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인 회장은 기업을 승계했다. 이전만 해도 방직업은 탄탄한 업종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그룹은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그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통업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중국 내 마트 1위 기업 일궈

인 회장은 1996년 대만에 첫 대형 마트를 세웠다. 프랑스 유통기업 오샹과 합작해 대형마트 ‘다룬파(大潤發)’를 설립했다. 영어로는 RT 마트라 불린다. ‘크게 윤택하고 돈을 번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룬파는 1999년 상하이 매장을 시작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단 한 곳의 매장도 폐점하지 않는 등 고객과의 신뢰를 우선시했다. 인 회장은 직접 경영진과 함께 매장이 들어설 곳에 사전시찰을 나갈 정도로 입지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

다룬파는 중국인들의 쇼핑습관을 연구해 신선식품을 매장 가장 앞쪽에 배치했다. 중국인들이 먹거리를 한꺼번에 많이 사지 않고 하루치 혹은 며칠 먹을 양만을 구매해 신선하게 조리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공급업체 및 직원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데도 힘썼다. 공급업체에 대금을 연체하거나 납품 가격을 후려치지 않았다. 공급업체와 자주 접촉해 품질이 좋은 제품을 10~20% 저렴하게 조달했다.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해 성과를 나눔으로써 직원들의 로열티도 높였다.

그 결과 2013년 다룬파는 미국 월마트, 프랑스 까르푸 등 세계적인 유통기업을 제치고 중국에서 1위에 올랐다. 현재 중국에서만 3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은 800억위안(약 13조2000억원)에 달한다.

인 회장은 전자상거래가 소매유통 시장의 주요 채널로 급부상하자 이 분야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다룬파는 2014년 페이뉴왕(飛牛網)이란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이듬해엔 중국 2위 가전유통업체 궈메이와 전자상거래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최근엔 우한에 B2C(기업과 소비자 간)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열었다. 인 회장은 앞으로도 매년 5억위안을 전자상거래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스타트업의 대부 역할도

룬타이그룹의 또 다른 주요 사업은 보험업이다. 2011년 미국의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대만 자회사 난산(南山)생명보험을 인수한 뒤 그룹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인 회장은 최근 대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대부 역할도 하고 있다. 스쿠터업계의 테슬라로 불리는 신생기업 ‘고고로(GoGoro)’의 최대 투자자가 됐다. 대만에서 많은 사람이 스쿠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 투자다. 고고로가 내놓은 스마트 스쿠터는 타이베이와 타오위안 등 대만 전역 89곳에 배터리 교체점을 두고 있다.

인 회장은 “대만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친환경 산업이자 기술력이 필요한 스마트 스쿠터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 회장은 교육과 자선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립대만대 토목학과 외래교수를 지냈던 그는 룬타이그룹 사내 대학교수로도 활동했다. 그가 강단에 서서 배움을 나누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릴 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배움의 즐거움을 전해줬던 수학 선생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인 회장이 주는 장학금을 받는 대만 학생들만 8만 명에 이른다. 중국 정부와 국유기업에서 일하는 인재들을 배출하는 산실로 꼽히는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도 세웠다. 그는 아시아판 노벨상을 만든 이유에 대해 “기존 노벨상이 118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네 가지 분야는 다루지 않았다”며 “인류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상을 제정했다”고 설명했다.

인 회장은 2011년 12월 사후 전 재산의 95%를 기부·자선사업에 쓰겠다고 서약했다. 그의 개인 재산은 약 4조원에 달한다는 게 대만 언론들의 추산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