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항을 다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NAFTA 재협상 시 필요한 조항들은 이미 TPP에 담겨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직후 ‘잠재적 참사’로 규정하고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폐기된 TPP를 사실상 복원하자는 취지다.

NAFTA 재협상 때 멕시코 측 협상대표를 맡게 되는 과하르도 장관은 “이미 합의된 TPP가 (국제무역에서) 미국에 빠르고 손쉬운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며 “미국이 과욕을 부리면 이미 따 놓은 승리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 규정,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등 구체적인 분야를 거론하면서 TPP에서 도출된 합의를 NAFTA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의 에너지, 통신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과하르도 장관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에게 이 같은 제안을 했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미국이 멕시코를 경쟁자로 볼 것이 아니라 중국 등 저비용 생산국과의 경쟁에서 힘을 합쳐야 할 동반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멕시코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불만은 지겹도록 들었다”며 “멕시코는 미국이 중국에 대항해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해결 방안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엄격한 원산지 규정이 자칫 비싼 관세를 물고서라도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늘리려는 중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멕시코의 제안은 당초 NAFTA 탈퇴로 기울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멕시코, 캐나다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고 재협상으로 방향을 수정한 뒤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같은 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재협상이 모든 당사자에게 공정한 결과를 제공하지 못하면 협정을 끝낼 수 있다”며 NAFTA 폐기 가능성을 재차 시사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