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환율조작국 지정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 위치는 유지했다.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무기로 중국에 ‘무역불균형 해소’ 약속을 얻어낸 것처럼 한국에도 통상압박을 가할 수 있어서다. 미국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한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 지정 시기는 오는 10월께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강화하는 동시에 대미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환율조작국 피했지만…미국 통상압력 거세질 듯
가까스로 조작국 지정 피해

미국 재무부는 지난 14일 의회에 제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종전과 같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 때와 마찬가지다. 중국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 등 5개국도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200억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GDP 3% 초과) △지속적 일방향 외환시장 개입(달러 순매수액이 GDP의 2% 초과) 등 세 가지 요건을 심사한다. 요건에 모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 두 개에 해당하거나 상당한 대미 흑자를 기록하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미국 내 조달계약 참여 금지 등 불이익을 받는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277억달러로 200억달러를 초과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7.0%에 달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원화 약세를 노리고 달러를 지속적으로 순매수할 경우 ‘지속적 일방향 개입 국가’로 지목되지만, 한국은 달러 순매수와 순매도를 적절히 취해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다.

‘미국 제품 수입 확대’ 압박

환율조작국이란 ‘칼날’은 피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10월까지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통상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번 환율보고서에서도 한국 정부에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한국을 중국, 대만, 스위스 등과 함께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공개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하며 압박했다. 달러 순매수를 통한 원화 약세를 유도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경기 회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을 더 투입할 여력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환율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이 사실상의 통상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많다”며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와 적극적인 재정 투입은 달러 약세(원화 강세)를 유지하고 내수를 살려 미국 제품을 더 수입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상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하고, 한국의 대미 흑자가 커지면 10월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수출도 늘려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결국 대미 무역 흑자 국가를 대상으로 통상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미 흑자를 줄이고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널리 알리는 등의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