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업무 특성을 따지지 않고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현장의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닌 재하청업체의 근로자까지 원청업체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파견이 금지된 한국의 노동법제하에서 제조업체들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사내하청이다. 기업들은 “법원의 노동계 편향적 판결로 사내하청마저 막히면 파견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사내하도급 리스크] 사내하청에 '불법파견' 멍에…"손 묶인 채 해외기업과 싸우란 말이냐"
◆재하청 직원까지 정규직 인정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기업에 큰 충격을 준 판결을 내놨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업체 직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사건에서다. 서울고법은 직접 생산공정 근로자뿐 아니라 부품 운반, 출고 차량 점검·포장 등 이른바 ‘간접 공정’ 근로자도 전원 현대차의 정직원으로 인정했다. 연구소에서 시제품을 제작하는 하청업체 직원도 정직원이라고 봤다. 현대차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현대차의 하청업체와 계약한 2차 하청업체 직원까지 승소했다. “묵시적 파견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과 똑같은 법리를 적용했다.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직접 근무 지시를 하면 하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법리다. 1심과 차이가 있다면 원고 수가 1200여명에서 160여명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원고 대부분이 현대차 정규직으로 특별채용돼 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불법파견’ 분쟁은 계속 늘어

한국의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은 경비,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한다.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서 파견근로를 쓰면 그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은 경기 변동 대응 수단으로 사내하청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명 이상 제조업체의 40%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한다.

파견과 사내하청의 차이는 원청이 파견업체(하청업체) 직원의 근로감독을 하느냐 여부다.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파견과 사내하청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파견’ ‘위장 도급’ 문제가 수시로 불거지는 이유다.

최근 하급심들은 근로자 손을 들어주는 추세다. 금호타이어 사건에서 광주지방법원(1심)은 하청 근로자가 별도 공간에서 독립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적법 도급이라고 봤지만 광주고등법원(2심)은 2015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현대제철(2016년 1월·1심), 포스코(2016년 8월·2심), 현대위아(2016년 12월·1심) 사건에서도 법원은 간접생산공정 직원을 모두 원청의 정규직으로 인정했다.

◆“파견 허용이 해답”

소모적인 불법파견 논란을 줄이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려면 제조업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은 2003년 노동개혁으로 건설업을 제외한 전 업종 파견을 허용했다. 이어 일본은 2004년 제조업 파견을 허용했다.

두 나라 모두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정규직 고용만으로는 산업 경쟁력 제고와 고용 창출에 한계를 맞으면서 파견근로 허용 범위를 확대했다.

한국 정부도 제조업 파견 허용을 추진해왔으나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다. 2015년 노·사·정 대타협에서 뿌리산업(금형·단조 등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산업) 파견 허용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됐지만 그 또한 무산됐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파견근로 허용 범위를 넓히되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