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연금' 의결권 판단…모두 외부에 맡긴다
삼성전자 등 924개 상장회사의 주주총회가 몰린 24일 ‘슈퍼 주총’을 앞두고 대기업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한 의결권 자문회사들의 반대 권고가 유독 많이 쏟아지고 있다. 정식 의뢰를 받은 것도 있지만 자문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권고도 많다.

자문사들이 상장사 경영현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췄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기업들에 또 하나의 ‘권력’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내 3대 연기금과 행정공제회는 최근 의결권 자문사와 잇달아 계약을 맺고 투자한 회사들의 경영사안에 대한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행정공제회는 1월 초, 공무원연금은 이달 초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첫 계약을 맺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사학연금은 지난해부터 자문사 의견을 얻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교직원공제회도 계약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권고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압박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투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고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기관투자가들이 수많은 투자회사의 경영 현안을 일일이 직접 판단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국내 기관과 외국인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총 1659개.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285개사에 5%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4년여 전에 비해 60개사가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 국내 연기금 규모가 불어나는 속도에 비례해 투자사도 크게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이 ‘최순실 게이트’를 거쳐 검찰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기관투자가들 자신도 찬반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전문성과 역량이다. 대부분 국내 자문사는 1700여개에 달하는 기관투자가의 투자회사 현안을 면밀하게 분석할 만큼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경험 부족과 법률·경영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합리적 결정을 권고할 때도 많다”(한 로펌 관계자)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개별 기업들은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엉뚱하게도 ‘자문사들의 권력’으로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렵사리 마련한 경영계획이 자문사의 반대로 틀어지면 경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문사의 권고를 참고만 하고 실제 결정은 기관투자가가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국민연금이 무슨 이유로 미국계 자문사인 ISS의 반대 권고를 묵살했느냐”는 논란이 생겨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권고 자체가 일정 수준의 구속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