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했다. 4년3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농축수산물과 국제 원유 가격이 각각 8% 이상 오르며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했다. 4년3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농축수산물과 국제 원유 가격이 각각 8% 이상 오르며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물가 상승은 ‘양날의 검’에 비유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은 경기가 좋다는 신호다. 경제가 살아나면 가계·기업 소득이 늘고 수요가 증가해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가 과도하게 오르면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 지출이 줄고 경기가 꺾일 수 있다. 드물지만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기도 한다(스태그플레이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제 성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 안정적인 물가 수준을 뜻하는 ‘물가안정목표’를 정하고 통화정책 등을 통해 물가를 관리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년3개월 만에 1%대를 벗어나 물가안정목표(2.0%)를 충족하는 2%대로 올라서자 시장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장기간 저물가 추세를 탈피해 경기회복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견해는 농수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란 것이다.
[2% 오른 소비자물가] 1%대 저물가 4년 만에 탈출…경기회복 신호 vs 일시적 상승
◆美 경기개선發 훈풍 부나

2일 통계청이 내놓은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 올랐다. 소비자물가가 2% 이상 오른 건 2012년 10월(2.1%) 이후 4년3개월 만이다.

1월 상승률은 2015년 12월 기재부와 한은이 공개한 중기(2016~2018년) 물가안정목표와 같은 수치다. 물가상승률이 13개월 만에 물가안정목표에 도달하자 시장에선 ‘경기회복의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온다. 물가상승률 중 0.36%포인트는 석유류 가격 상승의 힘이다. 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에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경기 회복 등에 대한 수요 증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합의도 영향을 줬지만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전망도 유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 경기 개선에 따른 훈풍이 국내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긍정론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글로벌 경기 회복과 맞물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본격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장기 저물가 국면을 서서히 탈피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저물가 탈피 움직임을 ‘리플레이션(reflation: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으로 가는 단계)’으로 설명하는 분석도 있다.

◆수요 안 늘어…일시적 반등

경기 회복 신호로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최근 물가 상승은 수요가 늘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천재지변 등 특이요인에 따른 농축수산물 가격 급등 등 외부 공급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당근(125.3%), 무(113.0%), 배추(78.8%), 계란(61.9%) 등 농축수산물 가격은 조류인플루엔자(AI)와 작황 부진 등에 따라 8.5%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0.67%포인트 끌어올렸다.

1월 석유류 가격이 8.4%나 뛴 것도 글로벌 수요 증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작년 1월 유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작년 1월 석유류 가격은 재작년 1월보다 3.4% 떨어졌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요 압력’에 의한 상승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농산물, 석유류 등 가격 변동이 심한 물품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1%대 중반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오일쇼크’처럼 공급 충격이 1~2년 이상 오래가면서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는 상황이 아니다”며 “실물경기에 대한 충격이 크지 않아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해석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황정수/심성미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