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A사는 작년 말 중국 거대기업의 자회사와 제휴계약을 맺어 중국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이 사실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개미 투자자들이 호재를 보고 뛰어들면서 A사 주가는 치솟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모든 게 대표 B씨의 사기행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급등한 회사 주식을 팔아치워 120억원을 챙긴 후였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계약서에 사인하던 중국의 대기업 대표이라는 사람은 영세한 개인회사 사장에 불과했다.

B씨는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기업 주식을 사들이고는 이를 담보로 제공하는 수법으로 자기 돈 한 푼도 없이 회사를 인수하는 무자본 기업 사냥꾼이었다.

A사는 결국 상장폐지됐다.

금융당국이 A사 사례와 같은 무자본 인수·합병(M&A)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유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경영권이 자주 바뀐 상장기업 중 무자본 M&A를 당한 사례에 대해 기획조사를 벌여 7개 종목의 불공정 거래를 적발하고서 9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33명은 통보하는 등 총 45명을 조치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은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거나 시세를 조종하는 등 수법으로 총 68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무자본 M&A는 기업 인수자가 자기자금이 아닌 차입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불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경영보다는 단기간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시세를 조종해 불공정 거래를 할 위험이 크다.

이번에 적발된 기업 사냥꾼들의 평균 기업 인수자금은 85억5천억원이었지만 차입비율은 90% 이상이었다.

이들은 자금 차입 사실을 감추려고 자기자금으로 인수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하거나 인수 주식의 담보제공 사실을 감추는 등 주도면밀하게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자신의 범죄전력 등을 숨기려고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거나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일부는 무자본 M&A를 중개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변경이나 신규 사업 추진 관련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챙겼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으로 인수할 수 있는 코스닥 기업이나 거래량이 적은 관리종목이 주로 이들의 범행 대상이 되기에 투자 시 유의해야 한다고 금감원은 조언했다.

실제로 이번에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무자본 M&A 대상 기업 7곳 중 6곳이 코스닥 상장사였다.

이 중 3곳은 상장폐지 됐고 1곳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나머지 3곳도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상 기업을 신규 유망종목으로 보이게 하려고 사명을 변경(5개사)하거나 신규사업 목적을 추가(5개사)하는가 하면 거래량을 늘리려고 액면분할(3개사)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 피해를 막고자 무자본 M&A 관련 종목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혐의가 발견되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경영권이 바뀌는 기업에 투자할 때 주의할 점을 금감원의 증권 불공정거래 신고센터 홈페이지(cybercop.fss.or.kr) 내 '투자자경보 게시판'에 안내하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cho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