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 이재용의 지주회사 지분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제안하면서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5일 국내 증시에선 적대적이던 엘리엇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오너 일가에 힘을 보태줬다며 긍정적인 분석을 쏟아냈고 삼성그룹주는 덩달아 들썩거렸다.

삼성전자(3.92%), 삼성물산(7.89%), 삼성생명(4.31%) 등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 있는 주요 계열사 주가는 뜀박질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가 엘리엇의 제안대로 삼성전자 인적 분할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할 경우 필요 자금을 대폭 줄일 수 있으나 개편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고 보고 있다.

엘리엇이 제안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선 일단 삼성 내부는 물론이고 시장 전반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삼성이 원하는 시나리오와 맞아 떨어지는 데다 지주회사 전환으로 투명성 강화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방안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 삼성전자 투자부문(홀딩스)과 사업회사 간 주식 스와프(교환)→ 자사주 의결권 부활 → 삼성전자 홀딩스와 통합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어지는 게 골자다.

핵심은 두 가지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30%(상장사), 50%(비상장사) 이상씩 보유하는 것과 이재용 부회장이 지주회사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확보'는 인적 분할 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간 주식 교환을 통해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할'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된다.

상법상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한 자기회사 주식이므로 의결권 자체가 없다.

그러나 관계사 간 주식 교환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하게 되므로 의결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사주는 13% 수준이다.

그러나 다음 수순인 이재용 부회장 측이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이는 방안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안은 분할한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시나리오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30% 정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처럼 삼성전자 지주사와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이재용 부회장 측은 보유 지분을 20% 안팎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삼성전자 주가가 170만원에 육박한 데 반해 삼성물산 주가는 10분의 1 수준인 17만원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이 상태로 합병을 해봐야 이재용 부회장 측은 지분을 3%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날 삼성물산 주가가 8% 가까이 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합병 비율 산정 문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주가를 낮추고 삼성물산 주가를 띄우는 식으로는 합병을 진행하기 어렵다"며 "특히 삼성전자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 기업이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은 자사주와 삼성물산 간 합병이라는 두 가지 지렛대를 이용하면 20조원 넘는 돈을 들이지 않고 지배구조 개편을 할 수 있으나 사회나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합병과 교환 비율을 산정하면 지주사에 대한 오너 일가 보유 지분이 20% 안팎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도 "이재용 부회장 측에선 보유 지분이 낮다는 게 문제인데, 보유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낮추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며 "50%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이 좌지우지될 상황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주회사 체제를 만든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역시 지주사인 SK 보유 지분이 6월 말 현재 23.4% 수준에 불과하다.

책임투자전문기관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국내 재벌그룹의 자사주를 활용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 방식은 문제가 있으나, 지주사 체제 자체는 지배구조 투명성 증대와 지배구조 개편의 불확실성 해소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세밀한 작업과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지주사 보유 지분이 20% 수준에 그치더라도 실적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그룹을 지배하겠다는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indi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