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비우량 회사채 인기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펀드 자산의 45% 이상을 비우량 회사채로 채운 하이일드펀드는 공모주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들이 하이일드펀드를 조성해 비우량 회사채를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과도한 청약 경쟁을 피해 대어급 공모주를 확실히 배정받기 위한 ‘티켓’을 사모으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BBB급 회사채 발행 1조원 육박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2분기 들어 BBB급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 4~5월 두 달 동안에만 6400억원어치가 팔렸다. 올 1분기 3개월 동안 발행액(3330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기관투자가의 AA급 이상 우량 회사채 편식으로 신용등급 A급 회사채조차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인기다. BBB급은 ‘AAA’부터 ‘BBB-’까지 10개의 투자적격 신용등급 중 하위 3단계에 해당하는 BBB+, BBB, BBB-를 뜻한다.
"호텔롯데 월척 낚자"…운용사, 비우량 회사채 '싹쓸이'
BBB급 회사채 발행이 늘어난 것은 하이일드펀드 투자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비우량 회사채 활성화를 목적으로 2014년 3월 하이일드펀드 제도를 도입했다. 펀드 자산의 30% 이상을 BBB급 회사채로 채운 하이일드펀드에 공모주 청약 시 전체 공모 규모의 10%를 우선 배정하는 혜택을 같은 해 5월부터 부여했다. 올해부터는 비우량 회사채 편입 비중을 45%로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BBB급 회사채 수요는 지난해보다 더 커졌다.

특히 올해 최대어로 꼽히는 호텔롯데 공모주 청약을 앞두고 하이일드펀드 수요가 더욱 왕성해지고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 해석이다. 투자자가 먼저 기업에 발행을 요청해 사모로 발행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고액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하는 이경민 미래에셋대우 PB(프라이빗뱅킹)클래스 갤러리아 상무는 “2014년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상장할 때 하이일드펀드가 공모주 투자로 높은 수익을 낸 전례가 있다 보니 올해 하이일드펀드에 신규로 가입하려는 투자자가 많다”며 “사모로 하이일드펀드를 설정하기 위해서 BBB급 회사채를 미리 시장에서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모주 시장은 공모금액 5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호텔롯데를 비롯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넷마블게임즈 두산밥캣 등 조 단위 거래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청약을 받는다.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은 15~16일이다. 이에 앞서 하이일드펀드를 설정하려는 운용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BBB+ 회사채 발행 줄이을 듯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BBB급 중에서도 투자위험이 작은 편인 ‘BBB+’ 회사채다. 롯데그룹이 인수한 물류회사 현대로지스틱스(BBB+)는 지난달 30일 사모로 2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다. 3월25일 300억원어치를 발행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수요가 풍부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하이일드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 내부 투자 심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BBB급이라고 아무 채권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요새 BBB+ 회사채는 매수 경쟁 심화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두 달 동안에만 BBB+급 중 한화첨단소재(300억원), 쌍용양회공업(300억원), 대한항공(500억원), 대성산업가스(700억원) 등이 사모 방식으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솔그룹 계열 정보기술(IT) 부품업체인 한솔테크닉스(신용등급 BBB)도 100억원 규모 회사채를 이달 중순 이전에 사모로 발행할 계획이다. 한 자산운용사가 호텔롯데 기관 수요예측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하이일드펀드에 편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억원어치 회사채를 사모로 발행한 뒤 한 달여 만이다. 범삼성가에 속하는 한솔그룹 채권 역시 하이일드펀드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다.

올 하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보유한 업체들의 차환 발행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양(BBB+), 보성(BBB), 대성산업가스(BBB+) 등이 미국 금리 인상 등 불확실한 자본조달시장 여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수백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