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여차하면 기업 이사진을 쫓아낼 수 있다고 위협한다. 그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거짓말쟁이에 도둑놈이라며 비판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발송한다. 회사는 이들이 ‘반(反)체제적인 주주’라며 불만을 터뜨린다. 흔한 행동주의 투자자 헤지펀드와 기업 간 다툼 같아 보이지만 해당 투자자가 빌 게이츠라면 어떨까?
투자기업에 '채찍' 든 미국 슈퍼리치들
○“회사 경영진보다 내 판단이 옳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대주주가 아니라 소수 지분 투자자가 기업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더 이상 일부 헤지펀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업을 경영해 큰돈을 번 뒤 다른 회사에 돈을 투자한 부자도 ‘행동주의자’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특히 ‘스몰캡’으로 불리는 소형 실적주의 경영에 개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지난해 7월 스위스 화학회사 시카의 매각계획을 반대해 무산시켰다. 그는 자기 재산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한 사모펀드 캐스케이드인베스트먼트 등을 통해 이 회사 지분을 5% 보유하고 있다. 시카 경영진은 이 회사를 경쟁회사 생고뱅에 팔려 했으나 캐스케이드 측은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개인적 욕심’으로 규정하며 “우리가 돈만 생각하면 지분을 팔고 떠나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400대 부호로 꼽히는 칼 버그 미드타운리얼티 창업자는 그 반대로 경영진에 회사 매각을 요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17% 지분을 보유한 텍사스 오스틴의 부동산 개발회사 스트래터스프로퍼티스에 “지난 19년간 오스틴에 개발 붐이 일었기 때문에 스트래터스는 지금보다 잘될 수 있었다. 경영진이 회사를 팔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사진을 갈아치우기 위해 돈을 쓰겠다고 공언했다.

○“행동주의 인식 달라져”

한때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후계자’가 될 뻔한 데이비드 소콜 넷제츠 회장은 자신이 27% 지분을 보유한 소규모 금융사 미들버그파이낸셜이 지난 연례 주주총회에서 보인 태도에 “실망했다”며 “내년 열리는 주총에선 훨씬 복잡한 문제를 다뤄야 할 텐데, 주주들로선 그때까지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했다. 이사진을 전부 교체해 버리겠다는 위협이다.

사모펀드 TPG캐피털 창업자인 데이비드 본더먼은 자기 자산을 굴리기 위해 세운 투자기구 와일드캣캐피털매니지먼트를 통해 투자(지분율 7%)한 바이오테크회사 소렌토테라퓨틱스 CEO와 경영진이 회사 자산을 계열사로 빼돌리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FT는 “헤지펀드에서 시작된 행동주의 투자 추세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부유한 개인도 이를 따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행동주의 투자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는 업체 13D모니터 창업자인 켄 스콰이어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부자들이 회사 경영이 마음에 안 들면 주식을 파는 것으로 대응하는 ‘월가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되는 것이 예전엔 ‘괴짜’ 낙인이 찍히는 일이었는데 요새는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일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