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선업계의 ‘방산 빅딜’을 검토하는 것은 빈사위기에 내몰린 국내 조선업계의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이면서 국가 차원에서 방산부문에 규모의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권 반응도 일단 긍정적이다. 조선업계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방산 통폐합은 합병 등 조선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 구상이 구체화되는 시점에 맞춰 타당성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헤쳐모여' 구조조정 촉진…KAI처럼 대형화로 경쟁력 확보
◆‘방산 빅딜’ 왜 거론되나

투자은행(IB)업계는 방산 빅딜이 향후 조선산업을 재편하는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단위의 적자가 난 조선업계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방산부문을 걷어내야 해양플랜트, 액화천연가스(LNG)선, 컨테이너선 등 민수부문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조선소 도크와 같은 대형 설비도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궁극적으로 2사 체제를 구축해야 한국 조선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등에 합병시키기 위해서는 방산부문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잠수함 건조 등을 통해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우조선해양은 해양부문의 최대 방산업체다.

만약 정부가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금 동원력이 나은 삼성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기는 방안을 추진할 때에도 방산을 분리하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방산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 삼성그룹이 또다시 대우조선해양의 방산사업을 떠안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아예 방산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 및 LIG그룹에 조선 방산을 통째로 넘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한화 등의 자금여력이 받쳐줄지가 관건이다.

방산사업 통폐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선업체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원활하게 조율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출범할 당시에도 합병 방식과 조건 등을 놓고 해당 기업들이 대립하면서 통합에 2년여의 시일이 걸렸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조선업계의 방산 빅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KAI, 어떻게 정상화됐나

정부는 방산 빅딜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한 KAI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1999년 말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의 항공부문 방산을 통합해 출범시킨 회사다.

자본금 2895억원으로 출범한 KAI는 이듬해 1139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2001년 적자 규모를 625억원으로 줄인 뒤 2002년 흑자(165억원)로 전환하는 등 빠른 속도로 경영지표를 호전시켰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출자전환, 차입금 상환 유예, 신규자금 지원 등을 통해 KAI의 경영 정상화를 지원했다.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총 2000원 규모 출자전환으로 KAI를 지원한 산업은행은 현재 KAI 지분 26.75%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시가로 1조8000억원어치 지분 규모다. 투자 수익이 800%에 이르게 된 것.

조선 빅딜도 비슷한 경로를 거치면 조선업체들은 방산사업을 떼어내는 대가로 현금이나 향후 출범할 통합 회사의 주식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내부 구조조정에 탄력을 붙일 수 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신규 자금 지원 등으로 통합 작업을 재무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빅딜이 성사되면 통합 방산기업은 정부의 안정적인 발주물량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현재 조선 방산의 연매출 규모는 대우조선해양 외에 현대중공업(6000억원) 한진중공업(2000억원) STX조선해양(2000억여원) 등을 합쳐 2조원 이상에 달한다. KAI(2조9000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해외에서 방산 물량을 수주할 때 국내 기업 간 과열 경쟁을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KAI도 안정된 국내 사업 기반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해 덩치를 키웠다. 2000년 1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던 KAI 해외 사업 매출은 2015년 1조8000억원으로 18배로 불어났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에서 62%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