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계열사에 싼 가격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해 대주주인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챙겨주면서 계열사에는 손실을 입히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일감을 받은 계열사의 수익성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 간 상품·용역거래에 대한 경제분석’ 보고서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가 기업의 사익편취와 상관관계가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실효성이 낮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14일부터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 회사와 20% 이상인 비상장 회사를 대상으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조사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실효성 떨어진다"
“계열사 이익 가로채기 아니다”

한경연은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이 높은 기업에서 상품이나 용역을 매입하면 오히려 수익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수가 있는 민간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상품·용역거래를 분석한 결과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총수가족 소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나 20% 이상인 비상장사와 거래한 계열사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2.86%포인트 더 높았다. ROA는 기업 순이익을 자산총액으로 나눈 수익성 지표다.

특히 내부거래 계열사 중 총수 가족 소유 지분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부터의 매입 비중이 10%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ROA는 0.38%포인트씩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이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이 높은 기업으로부터 상품·용역을 매입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도입 근거와 상반되는 결과다.

김현종 한경연 연구위원은 “공정위는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은 규제 적용 기준일 뿐이며 내부거래 조사를 통해 위법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도입 근거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총수 지분과 일감 몰아주기 반비례

한경연은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이 증가할 때 계열사에 대한 매출 비중은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총수 지분이 커질수록 일감 몰아주기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총수 가족의 지분이 10%포인트 증가하면 계열사 매출 비중은 1.72%포인트 감소했다.

또 시스템 통합관리, 부동산 임대, 사업전문서비스 등 총수 가족의 소유 지분이 높은 특정산업 계열사의 경우 사익편취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경연은 밝혔다. 실증 분석 결과 계열사의 매출 비중이 높아져도 수익성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사익을 편취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한경연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 이후 대상 기업이 오히려 증가하는 등 규제 효과가 없고 △지배주주 요건에 해당되면 무조건 사적편취 목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과 그렇지 않은 대기업, 중견기업, 외국 기업과의 차별 등 제도상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사익편취가 아닌 수익성 등 효율성 증대가 주요 목적이라 볼 수 있는 측면이 크다”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전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