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성 IPCC 의장이 말하는 '파리 협정'…"신 기후체제, 석유 안 나는 한국엔 기회"
서울 대방동 기상청에 있는 이회성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의장 사무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난방을 세게 틀지 않는다고 했다. 넓지 않은 방엔 책상과 책장, 손님 맞이용 소파가 전부였다. 국제기구 수장의 사무실치고는 검소하기 짝이 없는 방은 작은 체구이지만 국제 에너지 전문가인 이 의장을 닮은 듯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IPCC 의장으로 선출돼 작년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가했다. 195개 협상국은 ‘파리 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고 상한선을 1.5도까지 낮추기로 합의했다.

그는 파리 협정에 대해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의미심장한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화석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바꾸자는 국제적 약속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을 비롯해 엑슨모빌 같은 다국적 에너지기업까지 이번 파리 협정을 지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온 사용을 금지하는 몬트리올의정서를 앞장서서 반대하던 미 듀폰사가 갑자기 협약에 찬성한 이유는 대체물질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국적 에너지기업들도 신기후체제가 피할 수 없는 변화라는 걸 인정하고 대안 모색에 혈안이 돼 있을 겁니다.”

한국 정부는 UN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목표안을 제출했다. 재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의장은 “기업들 걱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그러나 지금은 걱정할 때가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기후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진행됐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화석에너지 기반의 경제구조를 연장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회성 IPCC 의장이 말하는 '파리 협정'…"신 기후체제, 석유 안 나는 한국엔 기회"
신기후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평가됐던 에너지기업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의장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 상한선은 앞으로 275Gt(기가톤)인 반면 매장이 확인된 화석에너지를 다 태운다고 가정했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총 44Gt”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기업들이 갖고 있는 화석연료가 ‘좌초 자산(시장 환경의 변화로 가치가 떨어져 손해보는 자산)’이 될 확률은 적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오히려 신기후체제는 한국 경제에 축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 입장에선 화석연료보다는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다. “지구 온난화 방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은 ‘2차전지’가 될 거예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비용이 얼마나 빨리 낮아지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시장에서 LG화학 삼성SDI가 선두를 달리고 있잖아요. 재생에너지는 부존 자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기술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신기후체제는 한국에 유리한 시스템입니다.”

그는 원자력발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IPCC 공식보고서 역시 전 세계 국가가 원전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온실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원전을 국가 에너지 인프라에서 제외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한국은 원전에 많은 투자를 해 왔고 관련 기술과 경험도 많이 쌓인 나라입니다.” 원전 비율을 확대하기 위해선 정부가 원전을 둘러싼 주민 반발 등 사회적 비용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