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구 네패스 회장이 여러 반도체 칩을 하나로 패키징하는 ‘시스템 인 패키징(SiP)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네패스 제공
이병구 네패스 회장이 여러 반도체 칩을 하나로 패키징하는 ‘시스템 인 패키징(SiP)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네패스 제공
LG반도체 생산기술센터장이던 이병구 네패스 회장은 1990년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는 “‘반도체장이’로 살면서 국내 반도체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반도체 주요 소재 대부분을 미국 일본 등에서 수입하던 때였다. 이 회장은 회사를 차려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10년 후 이 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다. TV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 후공정에 주목한 것. 국내에 관련 업체가 한 곳도 없을 때였다. 주위에선 비교적 손쉬운 메모리 반도체 쪽을 권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 회장의 ‘뚝심’에 네패스는 매출 3000억원대의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네패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칩의 ‘범핑’ 등 웨이퍼 레벨 패키징(WLP)을 하는 회사다. 범핑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인쇄회로기판(PCB)에 바로 붙여 전기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반도체를 작고 얇게 만드는 핵심 공정이다. 삼성전자, 매그나칩반도체, 일본 소니 등 국내외 회사가 주요 고객이다.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후공정을 함께하는 다른 곳에 비해 비메모리 부문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 크기를 10분의 1 이상 줄일 수 있는 ‘팬아웃 WLP’와 여러 작은 칩을 하나로 패키징하는 ‘시스템 인 패키징(SiP)’ 등의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스마트폰을 포함해 사물인터넷(IoT) 관련 제품,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에 폭넓게 쓰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처도 늘어나고 있다. 2년 전부터 자동차용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자동차 스마트크루즈 컨트롤 기능에 쓰이는 전방감지 센서를 팬아웃 WLP 방식으로 패키징해 미국 반도체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며 “폭스바겐 등 웬만한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이 제품을 쓴다”고 전했다.

◆자체 브랜드 칩모듈 회사 목표

네패스는 올해 급성장하는 중국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적자가 이어지던 싱가포르 법인을 2013년 청산하고, 지난 9월 중국 화이안시와 합작사를 차려 6600㎡(약 2000평) 규모 현지 공장을 준공했다.

이 회장은 “8인치 반도체 웨이퍼 패키징은 일부 중국 업체도 할 수 있지만, 12인치는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대만 쪽으로 물량이 넘어가고 있다”며 “중국 안에서 이 수요를 흡수하겠다”고 설명했다. 월 10만장 정도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데 향후 이를 3배가량 늘릴 계획이다. 앞으로 중국 내 다른 지역에 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장은 “네패스의 미래는 칩 모듈 회사”라고 강조했다. 손톱만한 하나의 칩 안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메모리 등을 넣은 모듈을 개발해 자체 브랜드를 달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제품 개발은 끝났고, 이를 활용해 만든 웨어러블 기기를 내년 6월께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