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내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양적 성장보다는 내실을 추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최근 내놓은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시장에 안착시키고, 내년에 선보일 예정인 친환경차의 완성도를 높이는 등 미래 성장잠재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년 경영 전략을 내년 1월4일 시무식에서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침체”

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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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고위관계자는 13일 “내년 시장 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세계 자동차 시장의 상황이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과 중국, 신흥국 등 현대차그룹의 주요 시장이 모두 성장세가 꺾이고, 그나마 괜찮은 미국 시장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게 현대차그룹 내부의 인식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따라 내년 경영전략의 초점을 위기를 잘 넘기는 한편 미래 성장동력을 다지는 데 맞추기로 했다. 주요 시장 점유율 목표는 중국 10%, 미국 8%, 유럽 6% 등 올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되 무리한 공장 증설이나 마케팅은 자제한다는 전략이다.

현대·기아차는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14~15일 정 회장이 주재하는 해외 법인장 회의를 연다. 이 자리에서 내년 생산 및 판매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내년 1월4일 시무식에서 2016년 사업계획과 연간 판매목표를 내놓을 계획이다. 정 회장은 내년 목표를 올해 목표치(820만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820만대 생산목표 달성 불투명

"내년 탄탄대로는 없다"…자동차판매 신기록보다 브랜드 가치에 승부건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 들어 해외 생산기지를 적극 확장해왔다. 주요 시장에 공장을 지어 물류비를 줄이고, 현지 맞춤형 차량 생산으로 소비자층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전략이 통해 2007년 396만대였던 현대·기아차 판매량은 지난해 800만대로 7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이후 기아차 멕시코공장(작년 9월), 현대차 중국 4·5공장(올해 4, 6월) 등을 잇따라 착공했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현대차 미국 2공장과 인도 3공장, 기아차 중국 4공장 신축 등을 통해 2018년께 연간 생산역량 1000만대를 갖출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올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 환율 환경 악화 등의 변수로 연간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시되면서 성장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그룹 내부에서 제기됐다. 현대·기아차의 지난달까지 판매량은 719만대로 작년 같은 기간 724만대보다 0.8% 줄었다. 이달 중 100만대 이상을 팔아야 연간 판매목표(820만대)를 달성할 수 있는데, 올해 월평균 판매량이 65만대라는 점에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차그룹 경영진도 ‘무리한 판매 확장으로 수익성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네시스로 수익성 끌어올린다”

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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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내실 추구의 첫 단추로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에 역량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제네시스 전담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의 기존 제품과 달리 가격을 올리더라도 시장의 거부감이 적을 것”이라며 “그룹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폭스바겐그룹에서도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의 영업이익률은 1% 안팎에 불과하지만, 포르쉐와 아우디 등 고급차 브랜드는 10%가 넘는다.

기아차 니로 이미지
기아차 니로 이미지
친환경차의 품질도 대폭 강화한다. 현대차는 내년에 친환경차 전용 모델을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다. 내년 1월에 아이오닉을, 기아차는 5월께 니로를 선보인다.

두 차종 모두 하이브리드, 충전식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세 가지 동력계통을 싣는다. 하이브리드 1위인 도요타 프리우스와 전기차 1위 닛산 리프를 함께 타깃으로 삼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친환경 전용차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가 나타난다”며 “경쟁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새롭게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