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투자로 회사에 100억원대 손해를 끼쳤다는 등 배임과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70)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 초기부터 과잉·표적 수사 논란을 빚었던 검찰이 이 전 회장을 무리하게 기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4부(부장판사 유남근)는 24일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비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당시 KT의 투자 결정은 합리적 의사 결정이었다”고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2001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OIC랭기지비주얼 등 벤처업체 세 곳의 주식을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103억5000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 이석채 전 KT회장 '103억 배임 혐의' 무죄 판결
법원은 기업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지 등 엄격한 해석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KT의 투자 결정은 신사업 분야 진출을 위한 합리적 의사 결정이었으며 회계법인의 가치평가 결과를 토대로 인수가액을 결정하는 등 절차를 밟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인수한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할 때 이를 배임이라고 본다면 기업을 인수하려는 모든 경영자는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결국 기존 사업만 계속해야 할 것인데 기존 사업이 정체됐거나 축소되는 경우 투자를 통한 기업 성장을 할 수 없게 되므로 기업에나 국가 경제 전체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1월~2013년 9월 회사 임원들의 현금수당인 ‘역할급’ 27억5000만원 중 일부를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이 비자금 중 11억7000만원을 경조사비 등 사적으로 쓴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부외자금(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씨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장 관계자 및 거래처의 경조사 비용, 임직원 격려비, 거래처 유지 목적 등에 썼다”고 판단해 횡령도 무죄로 봤다.

이 전 회장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검찰이 애초 무리하게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사부는 이 전 회장이 재직 중이던 2013년 10월22일 KT 본사 등 16곳을 압수수색하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이 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표적수사란 해석이 나왔다.

이 전 회장은 결국 그해 11월3일 자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같은 달 12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회장은 선고 직후 “당연한 판결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원외교 수사, 포스코 수사 등도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외국에 비해 한국의 배임죄 범위가 너무 넓어 사업에 실패한 기업인은 모두 범죄자가 되고 만다”며 “기업인들의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법 개정 등을 통해 배임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