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문물량 급감으로 중국 톈진에 있는 대보전자 휴대폰 부품 공장에 설비가 아닌 재고 물품이 쌓여 있다. 김동윤 특파원
삼성전자의 주문물량 급감으로 중국 톈진에 있는 대보전자 휴대폰 부품 공장에 설비가 아닌 재고 물품이 쌓여 있다. 김동윤 특파원
중국 동북부의 항구도시 톈진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거점 도시였다. 삼성전자의 휴대폰공장과 가전공장, LG전자의 가전공장 등이 톈진에 들어서면서 관련 부품업체도 대거 진출했다.

지난 21일 톈진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의 성공담은 이제 막을 내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이들을 믿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협력업체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커지는 '중국 리스크'] 공장 절반 재고 창고로…한국 전자부품사 "톈진 성공신화 끝났다"
○삼성·LG 협력업체 매출 반 토막

최근 폭발사고가 발생한 톈진항에서 북쪽으로 20㎞가량 떨어진 진난경제기술개발구에 있는 대보전자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삼성전자에 납품해왔다. 2012년까지만 해도 월 500만위안(약 9억3000만원)가량의 매출을 꾸준히 올렸다. 지금은 월 매출이 180만위안(약 3억3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가 톈진공장에서 생산하던 휴대폰 물량을 베트남 등으로 일부 이전한 데다 삼성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작년부터 급격하게 하락한 여파였다.

이 회사 1층에 있는 공장에 들어서니 700㎡ 정도 되는 공간의 절반가량에는 상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김우종 대보전자 사장은 “삼성전자 주문 물량이 급감하면서 생산라인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공간은 창고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380명이던 직원 수는 지금은 160명으로 급감했고, 한국 주재원들은 지난 4월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톈진시 북쪽 베이천구에 있는 류탄경제개발구에 입주한 LG전자 협력업체들에도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개발구 초입에 있던 LG전자의 한 협력업체는 2년 전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는 중국 병원이 들어섰다. 개발구 내에 있는 식당가에는 한때 10여개의 한국 식당이 주재원들을 상대로 장사했지만 지금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LG전자에 전자레인지 관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보태전자의 이재원 대표는 “4~5년 전부터 메디이 하이얼 등 중국 토종 기업들이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LG전자의 전자레인지 생산물량이 월 100만대에서 지금은 50만대 정도로 줄었다”며 “이 여파로 상당수 LG전자 협력업체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요즘 한국 기업인 모임에 가면 ‘밤새 안녕하라’는 작별인사가 유행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업체들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과 거래로 활로 모색

산둥성의 대도시 칭다오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섬유 주얼리 등 노동집약적인 한국 중소기업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업체들에 밀려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업체 사장들의 ‘야반도주’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한국 업체들의 고전이 이제는 전자부품업체가 진출해 있는 톈진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베이징 사무소장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중국 토종 기업들의 급성장, 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대정책 축소 등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3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5월 KOTRA 톈진무역관은 중국의 주요 대기업과 톈진지역 한국 부품업체를 연결해주기 위한 상담회를 열었다. 샤오미 화웨이 하이얼을 비롯한 중국 전자업체 6곳과 한국 부품업체 50여곳이 참석했다.

김준기 KOTRA 톈진무역관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만 의존해서는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톈진지역 협력업체 사이에 팽배해 있다”며 “상당수 기업이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그러나 “대부분 범용부품은 이미 중국 중소기업들도 생산하고 있어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추지 않은 한국 부품업체가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트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삼성전자 협력업체 대표는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정부 정책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들은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며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체는 이제 막차에서도 내릴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톈진=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