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신광톈디 명품 거리
한산한 신광톈디 명품 거리
중국 베이징시 조양구에 있는 신광톈디(新光天地)는 중국 내에서 대표적인 명품 쇼핑가로 손꼽힌다. 광장 주변에 들어서 있는 구찌 샤넬 에르메스 등의 화려한 명품 매장은 한때 급성장하는 중국 명품시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中 최고급 식당에 低價요리 등장…줄서던 名品매장 '썰렁'
지난 1일 오후에 가 본 신광톈디 명품 거리엔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20대 커플만 눈에 들어올 뿐 인적 자체가 드물었다. 각 매장 안에도 그나마 샤넬에만 손님이 몇 명 있었고 나머지는 한산했다.

2013년 초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부패척결 개혁이 2년째 지속되면서 중국의 소비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정부 관료와 공산당 간부 등이 핵심인 ‘상위 1%’ 부유층 덕분에 호황을 누리던 명품 브랜드,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베이징 대표 명품 거리 주말에도 한산

中 최고급 식당에 低價요리 등장…줄서던 名品매장 '썰렁'
신광톈디 명품 거리 중간쯤에 있는 샤넬 매장에 들어서니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핸드백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주말에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매장 입장이 가능한 적도 많았다”며 “시 주석 덕분에 요즘은 쾌적하게 쇼핑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곳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매장점원은 “보통 춘제(春節·설) 연휴 한 달 전쯤부터 고위 공무원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작년부터 ‘춘제 특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전 세계 명품 브랜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사치주의를 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등과 더불어 ‘4대 악풍’으로 규정하고, 공무원들의 근검절약 등을 담은 ‘8호 규정’을 공표하면서 명품 소비가 급속하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글로벌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명품 소비액은 1150억위안(약 20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 줄었다. 중국 내 명품 소비가 줄어든 것은 2007년 이후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도 매출 급감

부패 척결 개혁의 여파는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호텔, 고급 레스토랑, 바이주(白酒)업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양구 조양공원 내에 있는 젠이궁관(健一公館)은 베이징 내에서 최고급 중식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저녁 코스 메뉴는 최소 2000위안(약 35만원)을 줘야 한다. 하지만 작년 연말부터 젠이궁관 메뉴판에 1인당 300위안(약 5만원)짜리 저녁 코스 메뉴가 등장했다. 이곳에서 수년째 공무원을 접대해 왔다는 한 한국 중소기업 사장은 “단골 공무원의 발길이 뜸해지자 중저가 메뉴로 중산층을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급 레스토랑의 불황은 농수산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고급 요리의 주 재료로 쓰이는 다자셰(大閘蟹·대게)는 수요가 줄어든 탓에 작년 한 해 동안 가격이 40% 하락했다. 중국어업협회 관계자는 “다자셰 가격은 과거 10년 연속 상승했는데 최근에는 공무원들의 소비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고급 호텔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중국관광호텔협회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50여개의 호텔이 등급평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호화 호텔’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진해서 호텔 등급을 내렸다. 중소도시 닝보시의 츠시랜디슨플라자호텔은 지난달 중국 내 5성급 호텔 중 처음으로 파산했다.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은 “호텔에서 친한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도 익명의 제보 때문에 부패분자로 몰려 곤욕을 치른 공무원들의 얘기가 알려지면서 요즘 공무원은 고급 호텔 근처에 가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업으로 탈출하는 공무원도 속출

中 최고급 식당에 低價요리 등장…줄서던 名品매장 '썰렁'
2013년 초 시 주석이 부패 척결 개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중국 공무원과 공산당 간부들은 정권 초기의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부패 척결 개혁이 지속되자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 관영 CCTV가 최근 시 주석의 부패 척결 개혁의 성과를 담은 ‘기풍수립은 영원히 계속된다’라는 제목의 4부작 다큐멘터리를 내보내자 공무원들은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일부 공무원은 아예 기업으로 ‘탈출’하고 있다. 황이 은행감독관리위원회 법무주임은 작년 하반기 건설은행 부행장으로 이직했고, 천성 은감위 혁신팀 주임은 중국 최대 로펌 킹앤드우드맬러슨스로 옮겨갔다. 베이징의 한 금융계 인사는 “반부패 개혁이 지속되면서 중국에서도 공무원들이 호강하던 시절은 끝났다는 정서가 공무원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시 주석의 부패 척결 개혁으로 “중국에서도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그러나 “부패 척결 개혁이 법치주의 확립과 맞물려 진행되면서 상당수 중국 공무원들이 법 규정이 조금만 모호해도 아예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복지부동’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김동윤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