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후 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연 4% 정도였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후에 성장세가 꺾이긴 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제조업 분야 주력기업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대기업들이 일본 및 중국 업체들에 시장을 내주면서 고전하고 있다. 업종 간판기업들의 2분기 실적 쇼크도 격화된 경쟁 구도와 무관치 않다. 한국 기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위기의 한국기업] 中에 추월당한 조선…쫓기는 스마트폰…日과 격차 더 벌어진 車
○대표기업들 실적 줄줄이 부진

지난 2분기 국내 대표기업들이 보여준 실적은 이 같은 비관론을 뒷받침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2조원 이상 감소한 7조2000억원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캐시카우인 스마트폰 부문에서 중국 업체들에 시장을 빼앗긴 탓이다.

현대자동차는 올 2분기에 영업이익(2조872억원)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3% 급감했고, 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도 31.7% 줄어든 7697억원에 그쳤다.

조선업체들도 저가 수주로 발생한 부실을 회계에 반영하면서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1분기에 3625억원, 현대중공업은 2분기에 1조1037억원 영업손실을 발표했다.

정유와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요 부진, 중국발 공급과잉, 중동 경쟁사의 저가공세 등 ‘3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화학업계 대표기업인 LG화학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28.3% 감소한 3596억원에 그쳤다. LG화학의 영업이익률은 1년 새 8.47%에서 6.12%로 떨어졌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도 정제마진 악화로 2분기 5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입고 적자전환했다.

○‘제조업 한국’ 퇴색

대표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계열사와 협력업체, 관련 업계 전체의 이익 규모 축소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 부진은 삼성전기와 삼성SDI의 실적 악화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 삼성전자가 1500여개 협력업체에서 구매한 제품과 서비스 규모는 152조원 정도다. 삼성전자가 지출을 10%만 줄여도 협력업체들의 매출은 15조원 줄어 경영난을 겪는다.

화웨이, 레노버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세계 시장에서 영업을 강화하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 도요타는 렉서스 소형모델 가격을 대폭 깎으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00년대 내내 세계 1등 지위를 내주지 않았던 한국 조선업은 2012년부터 선박 수주량·건조량·수주금액 등 세 가지 지표에서 모두 중국에 밀리고 있다.

○비상경영 체제 가동

기업들은 잇달아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최대한 원가를 절감해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원가절감과 함께 울산공장 등 국내 공장 생산성 향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재무팀 등 스태프 조직 인원의 15%를 영업 부서로 보내고 임원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토록 하는 등 비용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인력 및 조직 개편을 통해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앞으로는 수익성 위주 수주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단순한 비용절감을 넘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빅3 조선사가 세계 1~3등을 차지하고 있지만 해양플랜트의 경우 자체 기술력으로 제작하는 부분이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부품을 사오는 식”이라며 “핵심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면 앞으로도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스마트폰 의존도를 줄이고 바이오 등 미래산업 중심으로 사업단위를 개편하고, 그간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기업 대상 사업(B2B)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20~3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신사업 중심으로 회사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은/전설리/남윤선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