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미래는 있는가] 중국 '國輸國造'에 흔들리는 '조선강국 코리아'
중국과 일본 기업의 협공에 조선업체들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조선업 ‘세계 1등’이라는 명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제 해운·조선 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수정환산톤수(CGT)를 기준으로 한 올 상반기 전 세계 상선 수주량은 944척이었다. 이 중 한국이 수주한 것은 164척이다. 중국(481척)의 30% 수준이고, 일본(177척)에도 밀렸다.

한국 조선업이 수주량에서 중국에 밀린 것은 2007년부터다. 2011~2012년에 잠깐 1위를 탈환했으나 지난해 다시 뺏겼고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6월 말 기준 각국의 수주 잔량을 비교해 보면 한국 조선업의 앞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은 886척으로 중국(2443척)과 일본(939척)에 이어 3위다.

수주량은 업계1위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그나마 수주금액은 2009년과 2010년을 제외하곤 지난해까지 꾸준히 1등을 지겨왔다. 그러나 올 상반기엔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기술력을 축적해 온 중국 조선사들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고 사세를 키우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수출입 물량을 나르는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지어야 마땅하다(國輸國造)’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中, 정부·해운사·조선소 협력

[한국기업 미래는 있는가] 중국 '國輸國造'에 흔들리는 '조선강국 코리아'
중국 후둥중화조선(HZS)은 최근 17만4000㎥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4척을 9억5000만달러에 수주했다. 척당 2억3750만달러 수준이다. 국내 조선업체가 만드는 LNG 운반선 가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선박을 발주한 곳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다. 영국 BG그룹이 개발하고 있는 호주 퀸즐랜드 커티스 LNG플랜트에서 생산되는 LNG를 중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는 BG그룹 측에 ‘중국 해운사와 중국 조선소를 사업 파트너로 삼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한국 조선사들은 입찰에 명함도 못 내밀었다.

후둥중화조선은 중국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LNG 운반선 건조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미 6척을 건조했고, 수주 잔량은 14척에 이른다.

중국 해운사도 중국 조선업체의 강력한 후원자다. 중국 해운사 코스코는 1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중국 조선사에 발주할 계획이다. 1만4000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만4000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라는 뜻이다. 지금껏 중국 조선소가 건조한 최대 컨테이너선은 1만TEU 정도였다. 앞으로

한국은 1만TEU 초과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분야에서도 중국 조선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中, 해양플랜트도 집중 육성

중국 정부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도 조선업체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는 자체 유전과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유전 개발 등을 자국 조선사에 맡긴다는 전략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2010년 발표한 ‘전략적 신흥산업 육성 및 발전 가속화 지침’은 해양플랜트를 포함한 첨단장비 제조산업을 국민 경제의 7대 기간 산업으로 육성해 대폭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2020 해양플랜트산업 제조분야 중장기 발전계획’ 등이다.

주요 내용은 중국 국영 석유·가스회사와 조선사들을 참여시켜 자력으로 석유·가스를 찾아내고 채굴하겠다는 방침이다.

日, 합병으로 경쟁력 강화

한동안 기를 펴지 못하던 일본 조선사들도 엔저 바람을 타고 활기를 되찾고 있다.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는 올 상반기 1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한꺼번에 수주했다. 대량 선박 수주는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 조선사들이 선호하는 물량이다. 국내 중견 조선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같았으면 국내 조선사가 수주했을 물량인데, 엔저 영향으로 일본 업체들이 치고 들어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본 조선사 간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도 경쟁력 강화에 한몫했다. 재팬마린유나이티드는 작년 1월 IHI마린유나이티드와 유니버설조선이 합병한 회사다. 작년 3월엔 미쓰비시중공업과 이마바리조선이 대형 LNG선 건조를 위한 합작회사 MI LNG컴퍼니를 설립했다.

또 지난 5월 일본 4위 조선사인 나무라조선은 10월까지 사세보중공업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韓, 기술격차 벌려야

국내 조선사들은 금융위기 후 위축된 상선 부문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영업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저가 수주가 적지 않았다. 올 들어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안은 기술력뿐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에코십 등 새로 열리는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특허 등으로 시장을 방어하며 선도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