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에 쏠린 눈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3일 서울 소공동 한은 별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일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기자회견에 쏠린 눈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3일 서울 소공동 한은 별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일어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35년간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한은맨이다. 조사, 통화정책 등 요직을 거치면서 중앙은행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앙은행의 첫 번째 책무가 ‘물가 안정’에 있는 만큼 경기 대응보다는 물가 안정을 더 중시하는 ‘매파’ 성향을 갖고 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정부와의 정책공조에도 탄력적으로 나서는 ‘비둘기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말이 통하는 인물

[새 한은총재에 이주열 내정] 핵심보직 두루 거친 '정통 한은맨'…2년 만에 '화려한 컴백'
이 후보자는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최고 요직인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 및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 부총재를 역임했다. 2007년 통화신용정책담당 부총재보를 맡으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체제를 전면 개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이성태 당시 한은 총재와 함께 은행자본확충펀드, 채권시장안정펀드, 시중은행 유동성 공급 등 정부와 공조해 각종 시장안정 대책을 추진했다.

이 전 총재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앞세워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면, 이 후보자는 당시 부총재로서 정부와 물밑 조율을 담당하면서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이 전 총재를 설득해 채권시장안정펀드 설립에 한은이 참여토록 하는 한편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 인수 작업도 주도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은 내에서 외부와 말이 잘 통하고 사고가 유연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할 말은 하는 외유내강

이 후보자는 일찌감치 차기 총재 물망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한은 총재 적임자’를 꼽는 설문조사에서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박철 전 한은 부총재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은 내부 지지를 바탕으로 통화금융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후보자는 35년 한은 생활을 마감하고 떠나면서 남긴 퇴임사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2012년 4월 한은 인트라넷에 올라온 이 후보자의 퇴임사를 본 한은 직원들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후보자는 “‘글로벌’과 ‘개혁’의 흐름에 오랜 기간 힘들여 쌓아온 과거의 평판이 외면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김중수 총재의 개혁 드라이브를 정면 비판했다. ‘상명하복’의 한은 조직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김 총재가 임원 승진의 1순위로 꼽혀온 조사국과 통화정책국 국장들을 보직 해임하고 젊은 인사들을 주요 국장에 전면 배치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후보자는 이처럼 한은의 보수적인 풍토를 뿌리째 흔드는 조치들에 대해 ‘말없는 다수’의 한은맨들을 대표해 퇴임사를 썼다는 후문이다. 이로 인해 당초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배려로 화재보험협회 차기 이사장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레 통보가 철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맥 그다지 많지 않아

이 후보자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연결되는 인맥은 별로 없는 편이다. 직장 생활 대부분을 한은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은에 들어온 뒤 고등학교 선배는 만난 적이 없다”며 “원주의 작은 학교여서 서울에 선후배들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 안팎에서 이 후보자와 가까운 사이로 꼽히는 사람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장관),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다. 대부분 금융위기 극복 당시 정부 측 협력 파트너였다. 앞으로 기재부 등과의 정책 공조가 보다 수월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정환/이심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