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증채무자에게도 국민행복기금 개별신청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은 자활 의지가 있다면 '보증의 덫'에 빠진 채무자도 구제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자활 의지가 없는 주채무자가 보증인의 신청으로 채무를 벗어던지게 되면 이들이 또다시 채무의 늪에 빠지는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금융연좌제'에 걸린 연대보증인도 행복기금 혜택
28일 금융당국과 국민행복기금 등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은 협약 가입 금융사들과 보증채무자 채무조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5월 중순부터 보증채무자도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민행복기금 관계자는 "금융권의 연대보증 정보를 취합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본다"며 "빠르면 5월 중순부터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국민행복기금이 출범할 당시에는 주채무자만 개별매입 신청이 가능했다.

보증인은 신청하면 일괄매입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한 사람이 여러 곳에 보증을 선 경우가 있는데다 방대한 연대보증 정보를 취합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보증채무자의 개별 신청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7월부터 제2금융권에서도 연대보증을 원칙적으로 폐지함으로써 '보증의 굴레'에 묶여 갑자기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을 막기로 했다.

그러면서 상환 의지는 있지만 갑자기 채무의 늪에 빠져 능력 이상의 빚을 짊어지고 사는 보증인들도 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금융권과 적극적으로 논의에 들어갔다.

앞서 이해선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26일 제2금융권 연대보증 폐지 계획을 발표하며 "주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한 보증채무자도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금융권과 협의중이다.

5월 중순에 발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별매입을 신청하게 되면 일괄매입 때보다 10%포인트가량 채무감면을 더 받을 수 있다.

자활 의지가 있는 보증인까지 혜택 범위에 둠으로써 국민행복기금의 효과를 최대화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행복기금의 다른 관계자는 "(보증인의 개별신청을 허용하지 않으면) 자신(보증인)의 운명을 남(주채무자)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해이' 부추길 것" 비판도
국민행복기금 측은 행복기금 혜택을 받는 이들이 최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주채무자가 상환 의지가 없는데도 보증인의 신청으로 채무가 탕감된다면 주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국민행복기금은 자활 의지가 있는 사람의 신청을 받아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고 나머지 빚은 능력에 맞게 장기·분할상환하도록 해주는 것인데 상환 의지 없는 주채무자도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보증인에게 채무를 떠맡기고 사라져버린 사람도 결과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자활 의지'를 강조하는 행복기금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도 "채무를 탕감받은 사람이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들이 다시 다중채무자가 된다면 행복기금이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접수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신청 대상이 바뀌면 신용회복위원회 프리워크아웃 신청자 등 국민행복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른 채무자들의 반발도 심해질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제2금융권 연대보증 폐지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큰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보증채무자까지 책임을 진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국민행복기금이 성공하려면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해야 한다"며 "자활 의지와 여신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 인력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고유선 차지연 기자 president21@yna.co.krcindy@yna.co.krcharg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