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경영학] 몸집만 불린 아르셀로미탈의 '미련한 한우물'…경기침체에 쇠락
지난 2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연합(EU) 의회 앞에선 수백명이 모여 벽돌을 던지며 과격 시위를 벌였다. 아르셀로미탈이 실적 부진으로 용광로(고로) 두 곳을 폐쇄하고 직원 630명을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다.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까지 중재에 나서면서 공장 폐쇄 계획은 철회됐다. 하지만 아르셀로미탈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처지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이 굴욕적인 구조조정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해본다.

◆구조조정 중인 철강 공룡

아르셀로미탈은 2006년 1월 당시 세계 1위 철강사인 미탈(Mittal)이 2위 아르셀로(Arcelor)를 합병해 탄생했다. 연간 조강(철) 생산량은 1억1300만으로 세계 2위 신일본제철(현 신닛테쓰스미킨)의 4배가 넘었다. 미국과 중국 캐나다 폴란드 카자흐스탄 등의 부실 철강사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내수용 산업으로 여겨지던 철강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다.

이랬던 아르셀로미탈이 지금 구조조정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 1월 벨기에 리게 공장을 폐쇄하고 1300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고 작년 6월엔 철강 가공판매 자회사인 스카이라인스틸을 미국 누코아에 6억500만달러를 받고 넘겼다. 또 보유 중이던 룩셈부르크 전력회사 에노보스의 지분 23.48%를 팔아 4억2900만달러의 현금을 확보한 것을 포함해 모두 22억2300만달러 상당의 자산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경영지원 부문의 인력을 30% 줄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셀로미탈은 지난해 매출 842억달러, 영업손실 32억달러, 순손실 37억달러를 기록했다. 실적 부진 속에 세계 35개 고로 중 23개만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아르셀로미탈의 신용등급을 지난해 11월 아예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으로 강등했다.

유럽연합(EU) 의회 앞에서 시위 중인 아르셀로미탈 직원들. AP
유럽연합(EU) 의회 앞에서 시위 중인 아르셀로미탈 직원들. AP

◆몸집만 키우다가 경기예측 실패

철강업은 대표적인 경기민감 산업이다.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와 경기 사이클 변동을 잘 예측해야 최적의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브릭스(BRICs), 동남아 등의 산업화가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까지 큰 호황을 누렸다. 2008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1169억달러와 120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그러나 2004~2007년 철강 호황의 ‘슈퍼 사이클’이 끝날 때에도 생산 확대라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고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며 인도와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속했다. ‘공급 과잉’의 부메랑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

양적 성장에만 주력한 것은 큰 실수였다. 고로, 즉 생산 설비가 늘어나면 분명 장점이 많다. 원료 협상력이 강화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판매 네트워크도 넓어진다. 하지만 아르셀로미탈은 고급 철강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특히 아르셀로미탈의 주 기반인 미국과 유럽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많았다. 셰일가스 개발 등을 위한 에너지강재가 대표적이다.

아르셀로미탈과 정반대 전략을 추진한 회사는 포스코다. 포스코의 생산량은 연 4000만 정도로 아르셀로미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포스코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230억달러 정도로 200억달러인 아르셀로미탈을 앞지른다. 파이넥스 등 새로운 제조 기술로 고마진 제품을 선보인 덕분이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전기강판이나 ‘철강제품의 꽃’인 자동차용 강판 등을 만들어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물론 아르셀로미탈은 한때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원가 경쟁력을 갖추기도 했지만, 바오산강철 등 중국 업체들이 약진하기 전까지의 얘기다. 이후 중국 업체들은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저가 시장을 평정했다.

◆새로운 사업 기회도 못 찾아

아르셀로미탈은 신사업 진출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결과 큰 덩치를 키웠지만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선 포스코와 신닛테쓰스미킨 등과 대비된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관 산업으로 진출하지 않은 것도 실착이었다. 철강 산업 전체의 투자자본 수익률(ROIC)은 2006년 19%에서 2010년 16%로 하락했다. 에너지강재 등 고부가 제품군을 제외하면 앞으로도 수익성 개선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시장 흐름 변화에도 아르셀로미탈은 미련하게 철강이라는 한우물만 팠다. 지난해 매출 구성을 보면 철강 제품 비중이 100%에 육박한다. 투자는 원재료 확보를 위한 광산 투자가 고작이었다. 인도 국영회사와 합작해 석유 탐사 사업에 진출한 미탈인베스트는 최고경영자인 락시미 미탈이 개인 자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반면 포스코는 철강 외에 에너지와 소재를 핵심 사업으로 개척하고 있다.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는 포스코를 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뽑았다.

박성훈 BCG 파트너/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