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제품으론 중국 못 이겨…고기능 석유화학제품…TV 유리기판 투자 확대"
“범용 상품으로는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기 어렵다. 고기능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

박진수 LG화학 사장(그림)이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박 사장은 지난 4일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박 사장은 “백척간두 갱진일보(百尺竿頭 更進一步)의 심정으로 중책을 맡았다”고 운을 뗐다. 백 척 높이의 장대 위에서 다시 한 발을 내딛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가 시점이란 얘기다.

그는 “세계 경제 회복세가 아직 미약해 해외 수요가 부진하다”며 “게다가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 중동 업체들과 힘겨운 가격 경쟁까지 벌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선 기술로 차별화된 제품을 내세워 경쟁사들을 따돌리는 길이 유일한 탈출구란 얘기다.

박 사장은 올해부터 석유화학, 정보전자소재, 2차전지 등 사업 부문별로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의 76%를 차지한 석유화학 부문은 흡수성이 좋은 수지인 SAP와 고기능성 타이어 등에 사용되는 합성고무인 SSBR을 시장 선도 사업으로 키운다. 전남 여수와 충남 대산 공장에 두 제품의 설비를 늘릴 계획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추진 중인 석유화학단지 조성도 가시화하고 있다. 박 사장은 “현지 기업과 지난해 합작사를 설립했고 올 들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초 공사를 시작하면 2016년 하반기부터 에틸렌 등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정을 소개했다.

정보전자소재 부문은 3D TV에 들어가는 편광판, FPR(필름패턴편광) 물량 증설과 TV용 유리기판 설비를 늘리는 것이 올해 핵심 사업이다. 박 사장은 “올해 신규 및 증설 투자액 1조3600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7400억원을 정보전자소재에 투입할 것”이라며 “부가가치가 높은 편광판과 FPR의 공급량을 늘리고 스마트폰 등 터치패널에 들어가는 인듐산화전극(ITO) 필름사업도 확대해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상반기 중으로 경기 파주에 유리기판 생산라인 2개를 추가로 착공할 계획이다.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전지사업과 관련, 박 사장은 “미국의 경기 침체로 전기차 수요 증가가 예상보다 더딘 것은 사실”이라며 “순수전기차(EV)보다는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기차(HEV)와 충전형하이브리드카(PHEV)용 전지에 우선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지 거래처 10곳가량을 확보해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주)럭키에 입사한 박 사장은 20년 가까이 생산 현장에서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이사에 올랐고, 2007년 LG화학에 흡수 합병된 후 석유화학본부장(사장)을 맡았다. 본부장 시절 수시로 지방 공장에 불쑥 내려가 4시간 이상 곳곳을 걸어다니며 현장을 점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원들에게 매월 한 차례 보내는 사내 통신엔 자신의 캐리커처를 바꿔가며 그려 넣을 정도로 섬세한 면도 있다. 임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결재를 마치고 나가는 후배를 방문 앞까지 일일이 배웅하는 것도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