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한국은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를 다변화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정치리스크 컨설팅 회사로 미국 뉴욕에 본사가 있는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43·사진)은 “한국은 균형 잡힌 국제 관계를 통해 세계의 중심축 국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사라졌다는 뜻의 ‘G제로’라는 신조어를 만든 그는 “G제로 시대에는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유연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중심축 국가가 번영한다”고 주장해왔다. 브레머 회장은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과 사회 불안으로 변동성이 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중·일 영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국은 아직 선택권이 많은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에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미국뿐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강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아직 불안한 나라다. 너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미국은 아시아 내에서 일본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그렇다. 일본은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달리 미국과 같은 가치(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고 선진화된 경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선택권이 많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이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나.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축’이 돼야 한다. 그래야 만약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와도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유럽의 위기 요인은 유로존 붕괴가 아니라 성장 정체와 경쟁력 상실이다. 지난 5년간 성장이 멈췄고 인플레이션율은 11%를 웃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긴축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유럽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나.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도 성장이 둔화됐고 중국마저 경착륙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이 없는 ‘G제로 시대’에 세계 경제는 더 취약하고, 더 변동성이 크고,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다. 만약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면 그 후폭풍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중동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셰일가스와 같은 비전통적인 원유와 가스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 대체에너지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만큼 중동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중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폭력과 소요 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역시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이지만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 것이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 이언 브레머는 누구

'G제로' 용어 만들어

미국의 외교정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정치학자다. 미국과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 등 국제사회를 이끄는 국가나 국가집단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뜻의 ‘G제로 세계’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연구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유라시아그룹을 1998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