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街 2세시대…경영·경제·미술史 전문가 맹활약
미술품 유통시장을 이끌고 있는 화랑업계에 2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 상업화랑 반세기 동안 미술시장 밑바닥에서 경험을 쌓아 자수성가한 1세대 화상이 2선으로 물러나거나 타계하면서 국내외에서 미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2세들이 사세 확장을 꾀하고 있다.

갤러리 현대와 동산방화랑에 이어 국제갤러리, 가나아트갤러리, 예화랑, 선화랑, 진화랑, 표화랑 오너의 자녀들이 화랑업계 리노베이션을 이끄는 등 업계 전체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세대 오너들이 현장경영 노하우에 밝다면 2세들은 미술교육과 갤러리 경영 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아 글로벌 화랑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 인사동의 선화랑과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 진화랑, 선화랑은 1세대 화랑 주인의 작고 이후 자연스럽게 2세대 경영 승계가 이뤄졌다.

선화랑은 지난해 6월 작고한 김창실 대표의 후임으로 큰며느리 원혜경 씨(54)가 경영 일선에 나섰다.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나와 사회복지 전문가로 활동해온 원 대표는 1995~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스테이트대와 버클리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1980년대 시어머니 김창실 회장이 창간한 미술전문지 ‘선미술’의 취재기자로 활동한 원 대표는 1990년 초 국립현대미술관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뒤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올해는 중견 원로 작가의 전시회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의 해외 진출 교량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립 34주년을 맞는 예화랑은 2010년 이숙영 전 대표가 타계하면서 장녀 김방은 씨(41)가 화랑 업무의 전면에 나섰다. 전시기획 홍보 업무는 물론이고 디스플레이, 마케팅에도 관여한다. 김 대표는 런던 에섹스대를 졸업하고 갤러리 경영학 전공을 살려 1998년부터 기획실장을 맡아 마케팅 혁신을 지휘해왔다.

진화랑의 경우 유위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양아들 유재웅 씨(41)가 지난 1월 대표 자리를 이어받았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유 대표는 2007년부터 무역업을 정리하고 화랑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유 회장이 해오던 초대전보다는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사진 회화 작업을 개인전이나 그룹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가장 먼저 2세 경영이 이어진 곳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동산방화랑이다. 박우홍 대표(59)는 1990년부터 아버지 박주환 회장으로부터 화랑 경영을 배운 뒤 2000년 가업을 승계했다.

1970년부터 근·현대 미술시장의 산파역을 해온 갤러리 현대 역시 박명자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2006년부터 둘째 아들 도형태 씨(44)가 대표를 맡으면서 ‘모자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국제기획전에 강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도 지난해 큰아들 찰스 김(35)을 대표로 앉혀 경영 지도를 하고 있다. 캘리포리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찰스 김은 미국 회계법인 PwC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아트경영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가나아트갤러리를 비롯해 표화랑, 청작화랑, 아트사이드갤러리, 노화랑도 2세들이 현업에 뛰어들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화랑협회장을 맡고 있는 표미선 표화랑 대표의 큰딸 하이디 장(37)은 LA지점 대표로 국내작가들의 해외 전시회를 디렉팅하고 있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의 장남 신광수 전시기획팀장(37)은 국제교류전과 아트페어 참여를 통해 해외업무를 익히고 있으며, 이호재 가나아트갤러리 회장의 큰아들 정용 씨(33)는 올초 상무로 승진, 전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의 큰딸 정연 씨(31)는 큐레이팅 업무,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의 장녀 혜미 씨(29)는 아트매니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세들이 공격경영을 선포하면서 점포 확장 등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들은 미술품 전시 판매 등 핵심 사업 강화와 함께 국내 작가의 해외 프로모션, 미래 사업 투자 확대,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