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8개월 연속 동결(현재 연 3.25%)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사진)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결정은 금통위원 6명의 만장일치였다”며 “동결도 중요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경기가 가라앉고 있지만 물가 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금리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한은 안팎에선 “한은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우선 한은의 금리 결정에 대해 시장의 주목도가 떨어졌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수개월째 ‘보나마다 동결’이란 컨센서스(합의)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한은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은 본연의 임무인 ‘물가안정’에서의 존재감 상실이다.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여전히 4%를 넘는다”며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표시했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한 뾰족수는 없다. 오히려 최근 정부가 ‘배추는 농림부 사무관, 기름은 지식경제부 사무관’ 식으로 품목별 물가관리실명제를 실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제품 가격 인하를 주도하면서 물가당국으로서 한은의 입지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한은법 개정으로 금융안정 기능이 추가됐지만 한은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물가안정”이라며 “요즘 한은을 보면 단순히 돈 찍어내는 기관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2년 가까이 파행 운영되고 있는 점도 한은의 위상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 한은법이 정한 금통위원 정원은 7명이다. 하지만 2010년 4월 박봉흠 위원이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지금까지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시중에선 “대통령이 금통위원을 놀고먹는 자리고 여기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김 총재나 추천권을 가진 대한상의는 금통위원 공석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오는 4월이면 현재 6명의 금통위원 중 4명의 임기가 끝난다”며 “통화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많다”고 우려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