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한국경제의 재조명' 토론회

제조업 중심의 추격형 성장전략이 한계에 이르며 '한국경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의 재조명'을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갖고 경제성장 전략의 새로운 모색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경제 총론 △복지 △일자리 △금융 △기업 경쟁력 △대외경제정책 등 6개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불공정한 사회' 인식 만연하며 정부정책 왜곡 가능성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은 '덫에 걸린 한국경제, 탈출구'에 대해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세계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해 선진국을 효율적으로 쫓는 추격형(catch up) 성장전략을 펴왔다. 제조업 중심의 생산성 향상이 가능했던 이유다. 그러나 고 본부장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추격형 성장에서 벗어나 생산성 향상이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비스업, 중소기업의 생산성 부진이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또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노동력과 자본이 이동하고 영세 기업을 퇴출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저생산성 분야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 따라 이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고 본부장은 우리 사회에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정책 선택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복지 확대와 증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재정 적자와 정부부채가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인적 자원의 질도 우리 경제의 덫 가운데 하나로 지적됐다. 고 본부장은 고등교육이 '반값 등록금'보다 '교육 서비스의 질적 확충'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등 교육은 학력 측면에선 국제 학습성취도 평가(PISA)의 수위권에 오를 정도로 우수하지만 장기 효과는 불투명하다. 그는 배경으로 입시 위주 교육을 꼬집었다.

특히 대학교육의 질적 경쟁력은 경제규모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대학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59개국 가운데 39위로 하위권이다. 세계 200위에 포함된 대학 수는 4개에 불과하다. 고 본부장은 과감한 대학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중소기업,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시장친화적 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외 개방을 확대하고 진입 장벽을 낮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모든 중소기업을 보호하기보다 생산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일용직·무급종사자·실업자 등 취약계층 지원, 공공부조제도에서 근로저해 유인 제거,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조순, 워싱턴 컨센서스 비판, "자유주의는 만능 아니다"

조순 전 부총리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만능 사상'이 현재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 전 부총리는 "자본주의 위기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자본주의가 위기가 아니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이들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유주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유주의 만능 사상'이 문제라는 뜻이다.

그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개방화·자유화·민영화를 경제위기의 배경으로 지적했다. 그는 미국 경제를 예로 들어 소비와 비교해 저축이 작고, 실물경제가 위축되는 가운데 금융 부문은 비대해지는 등 '불균형'이 경제를 망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장기적 전망보다 주가를 의식한 단기적인 경영에 중점을 두는 것도 불균형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부총리는 "애덤 스미스 때도 보이지 않은 손이 공익을 보장하지 않았다" 며 "불균형 경제를 고치려면 작은 정부면 항상 좋다는 미신부터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이 18~19세기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방임주의 덕분이라기보다 연방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을 민간이 따랐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그는 '유능한 정부'에 방점을 찍고 "경제는 시장과 정부가 같이 끄는 쌍두마차가 돼야 한다" 면서 "시장이 잘 작동하려면 정부가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경제가 지금까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고 그것이 대부분 성공했다면 이제는 확고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전 부총리에 따르면 유능한 정부는 계획을 세워 사람과 돈을 관리하는 정부다. 교육·고용·복지 정책을 효율적으로 펴는 동시에 중장기 재정계획을 통해 지출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것들이 기초가 되면 불균형, 불공정, 불안정 등 경제의 여러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박은아 기자 sn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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