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m 깊이의 바닷속에 침매터널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대우건설이 2004년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의 일부 구간(3.7㎞)을 침매 방식의 해저터널로 잇기로 결정했을 때 네덜란드 협력회사는 이런 의견을 내놨다.

침매터널 시공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회사의 진단이었다. 대우건설 경영진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선박 군함 등의 항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침매터널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시공단계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었다.

바다 밑바닥에 굴을 파는 해저터널 방식을 검토했지만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안으로 떠올린 게 콘크리트 터널을 육지에서 만들어 바닷속에서 연결하는 침매터널 공법이었다. 네덜란드 협력사의 반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공사구간의 수심이 너무 깊고 지반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대우건설은 그러나 '정면 돌파'를 택했다. 연약한 바닥 지반은 파일을 박아 보강했다. 바닷속 공사는 구조물을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고 부드럽게 옮기는 신기술을 자체 개발해 해결했다. 거가대교 침매터널 구간은 대우건설의 이런 도전 정신이 가져다준 결실이었다.

◆신성장 동력 해외플랜트

대우건설은 다른 대형 건설사와 다른 독특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신시장과 신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점이다.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건설업체 수주전이 심한 중동 대신 아프리카 시장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나이지리아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에서 신뢰를 얻어 탄탄한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수주하는 공사도 차별화해왔다. 부가가치가 높은 발전소와 가스플랜트에 집중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응수 플랜트사업본부장은 "손해를 보는 공사는 절대 수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다 보니 다른 업체들이 소홀히 하는 분야와 신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해외부문 매출 비중을 2015년까지 50%대로 높일 계획이다. 조 본부장은 "북아프리카 · 중동 지역의 민주화 혁명과 수주경쟁 심화로 여건은 녹록지 않다"면서도 "경쟁 우위에 있는 플랜트분야 프로젝트를 계속 수주하고 원자력 · 조력 발전소 등 신시장을 선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도시 수출1호 기록

주택 분야에선 다양한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아파트,조망을 극대화한 골프 빌리지,최고급 빌라,주거형 오피스텔 등 다양한 주거상품을 대형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선보였다. 대우건설은 다른 건설사들이 대도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인구 20만~50만명 수준의 중소도시에도 적극 진출했다.

국내 건설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신도시 수출에도 나섰다. 기반시설 조성 공사 중인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부그졸 신도시에 이어 올 하반기엔 베트남 호찌민시 '따이 호 따이' 신도시를 착공한다. 베트남 신도시는 기반시설 조성,분양 등 신도시 건설 전 과정을 수출하는 1호로 기록될 전망이다.

부가가치가 높고 설계 시공 등이 까다로운 초고층 빌딩 사업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송도 동북아트레이드 타워가 대표작이다. 이 건물은 305m로 국내에서 가장 높다.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640m(133층) 빌딩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반포한강시민공원 앞에 띄운 '플로팅 아일랜드'는 세계 최대 인공섬이다. 수상레저 시설부터 공연 · 전시 · 컨벤션시설까지 갖췄다. 이준하 건축사업본부장은 "초고층빌딩 특수건축물 등에서 차별화된 기술력과 시공실적을 갖고 있다"며 "축적된 개발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건설사가 기획해 사업을 제안하는 '기획제안형 프로젝트' 등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토목의 역사를 새로 쓴다

대우건설이 시공 중인 동홍천~양양고속도로 인제터널 구간은 국내 최장 도로터널로 기록될 전망이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를 잇는 이 구간은 12㎞로 이 가운데 10.96㎞가 터널이다. 국내에선 가장 길고,전 세계에선 11번째로 길다.

거가대교 침매터널은 다섯 가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세계 140여개 침매터널 중 가장 깊은 곳에 설치됐다. 터널을 구성하는 구조물 한 개는 180m로 세계 최장이다. 구조물 18개로 3㎞가 넘는 침매터널을 만들었다. 구조물과 구조물 사이의 누수를 막기 위해 세계 최초로 이중 조인트(지수제)를 사용했다. 파도가 심한 외해 연약지반에 설치된 세계 첫 터널이기도 하다. 구임식 토목사업본부장은 "거가대교가 세계 침매터널 공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자부한다"며 "공법을 수출하기 위해 요르단 등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도약 발판 마련

대우건설은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 사관학교'로 불린다. 대우건설 출신들은 대기업 계열 건설사와 중견 건설사 10여곳에서 CEO로 활동 중이다.

건설업계가 대우건설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국내외 건설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 많아서다. 업무를 실무자에게 위임하는 조직문화 덕에 일찍부터 'CEO DNA'가 형성된다는 해석도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 경영'을 최전선에서 수행했던 회사여서 도전 정신도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우그룹 해체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난을 거치며 위기관리 능력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맞으면서 역동성을 되찾을 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단순한 대주주가 아니라 국내외 개발프로젝트,민자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등의 파트너로서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돕는다"며 "대우건설이 세계적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