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젠 뭘 먹어야 하나?"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대지진으로 초래된 '먹을거리 공포'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덮어쓴 농산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다 오염 해역의 확대로 수산물 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수돗물조차 불안한 상황이다. 잔뜩 팽창된 공포는 태평양마저 단숨에 건넜다. 미국은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생산한 모든 유제품과 채소,과일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도 곧바로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지축을 흔든 쓰나미가 이번엔 세계의 식탁을 덮치고 있다.

◆비상등 켜진 밥상

일본 후생노동성은 23일 양배추 순무 등 11개 채소에서 허용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세슘과 요오드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잎사귀 채소의 일종인 경립채에서 나온 세슘은 허용치를 164배 초과했고 신부동채는 56배,브로콜리는 28배를 넘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고등이 켜진 농축산물은 시금치 원유(原乳) 가키나(채소의 일종) 등 3개에 불과했다.

건강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던 일본 정부의 태도도 바뀌었다. 아무 조치 없이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오염 식품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이날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서 생산한 잎채소(잎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채소)의 섭취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이어 후쿠시마현과 이바라키현에서 생산한 채소와 원유에 대해 출하 제한 조치를 내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방사성 물질 검출량이 가장 많은 경립채의 경우 하루 100g씩 1주일을 먹어도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당분간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해역의 방사능 오염도 걱정거리다. 현재 원전 20㎞ 이내 해역에서 안전기준을 16~80배 초과한 방사성 물질 '요오드 131'이 검출된 상태다. 문제는 갈수록 오염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런 우려를 감안해 방사성 물질 조사 범위를 태평양 쪽으로는 30㎞까지,남북으로는 7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수돗물 너마저

수돗물도 안전지대에서 이탈했다. 후생노동성은 "후쿠시마현의 고리야마와 다무라 미나미소마 등 5개 시에서 허용치인 '㎏당 100베크렐(㏃)'을 초과하는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며 해당 5개 시에 유아의 수돗물 섭취를 자제하라고 통보했다. 성인의 방사성 물질 허용치는 ㎏당 300㏃이지만,방사능 오염에 취약한 유아는 '㎏당 100㏃'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방사성 요오드 오염이 가장 심각한 후쿠시마현 이타데무라에는 성인에 대해서도 수돗물 섭취 제한 권고가 내려졌다. 이 지역의 방사성 요오드 검출량은 ㎏당 965㏃이었다.

도쿄에서도 정수장 한 곳의 수돗물이 허용 기준치를 넘었다. 이날 검출된 요오드량은 ㎏당 210㏃.도쿄도는 곧바로 유아들에게 수돗물을 먹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밥상에 올라가는 채소와 생선뿐만 아니라 밥을 지을 물마저도 방사능 오염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수입 금지 나선 미국

일본발 먹을거리 공포는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이날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방사능 오염 우려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서 생산한 모든 유제품과 채소 과일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일본산 식품 수입 비중은 4% 정도다. FDA는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 식품 공급에 차질은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이날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일본산 식품에 한해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수입 금지를 검토 중인 생산지는 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등 4개 현이다. 유럽연합(EU)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한 방사성 물질은 이미 대서양을 넘어 아이슬란드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곳곳에서도 발견됐다. 프랑스는 EU에 일본 농산물 수입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원전 사태로 전 세계에 일본산 농산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