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3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정유사들이 가격 인하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정유업계에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일단 "가격을 내리라"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의 소매 가격은 지난해 10월 첫째주 이후 석 달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초고유가였던 2008년 9월 이후 2년3개월만에 최고가격을 기록중이다.

보통 휘발유를 기준으로 가격을 살펴보면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이 44%, 유류세가 50%, 유통·주유소 이윤이 6% 정도다.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지 않는 한 기름값이 떨어지려면 정유사나 주유소가 자신의 이윤을 조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구조다.

정유업계는 "지금 기름값이 높긴 하지만 가격을 내릴 여지가 거의 없다"며 한결같이 가격 인하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식료품을 파는 회사와 달리 정유업은 제조과정이나 유통체계가 아주 단순하고 원가와 환율 등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유리알'처럼 공개됐다"며 "ℓ당 10원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유사의 매출 규모는 수조∼수십조원으로 덩치가 크긴 하지만 정유사업 부문만 따로보면 영업이익률은 1∼2% 사이고 2000년, 2001년, 2008년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유사들은 유가 상승요인이 있을 때는 이를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다가 인하요인내릴 땐 '찔끔' 내린다는 소비자의 불만을 사왔다.

기름값이 높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유사들은 지난주 세전 공급가격을 전주보다 휘발유는 ℓ15.9원, 경유는 22.2원 내리기도 했다.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내린 것은 4주만이다.

주유소 역시 가격을 내릴 처지가 못된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선 서울지역 주유소 한 곳이 한 달에 평균 2천드럼(40만ℓ) 정도 파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보통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과 정유사 공급가격을 뺀 유통·주유소 이윤은 ℓ당 98.8원으로 40만ℓ를 판다고 하면 주유소가 얻는 소득은 월 4천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월 4천만원에서 유통비용, 인건비, 임대료, 공공요금, 카드 수수료 등을 빼면 실제 주유소의 이익은 월 200만원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여기서 더 가격을 내릴 순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궁박한' 사정에도 고유가가 서민경제에 큰 부담인 것은 사실이고 대통령이 직접 기름값을 언급한 만큼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일시적이라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내리면 좋겠다는 게 정유사의 속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물가 안정이 최대 현안인 만큼 결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