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지난 6월7일 대규모 복지 예산 감축과 공공부문 근로자 구조조정을 골자로 하는 800억유로 규모의 재정감축안을 내놓자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유럽의 주요 일간지들은 '독일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긴축에 돌입한다'며 1면 머리기사로 다뤘고,살림이 넉넉한 독일이 경기 진작에 나서기를 기대했던 프랑스와 스페인 등 다른 유럽 주요 국가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의 금융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헤센주립은행의 거시경제담당 선임연구원인 크리스티안 아펠트는 "지난해 독일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풀어놓은 자금이 970억유로에 달한다"며 "안그래도 유로화 약세로 원자재 가격 등이 강세를 보이는 시점에서 물가를 자극하기보다는 재정적 기반을 다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펠트는 "지난 독일의 주요 개혁정책들이 경제 안정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긴축은 사실 낯선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아펠트의 말처럼 독일이 유럽 위기 상황에서 안정적 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상시적으로 추진해온 노동 개혁과 구조조정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조치가 2005년의 하르츠 개혁(Hartz Ⅳ)이다. 당시 독일 정부는 고질적인 실업률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판단했고 개혁위원회 페터 하르츠 위원장의 주도 아래 실업급여를 대폭 삭감하는 개혁안을 내놨다. 연금 수령자를 중심으로 한 유권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정부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7년에는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고용유연화 정책을 도입했다. 단축노동안이 대표적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은 줄었지만 대신 실업률을 유럽 최저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개혁정책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꼽고 있다. 좌파 성격의 슈뢰더 정권이 복지감축에 나서자 배신감을 느낀 국민들은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 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성격의 기독교민주당을 택했다. 하지만 메르켈 정부는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 바통을 이어받아 오히려 강도를 높였다. 연금수령 연령대를 높이고 기업들의 해고 요건을 완화한 데 이어 최근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긴축안까지 내놓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