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은행의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 포기 이후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와 위안화 간의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가 본격 개막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안화가 대외적인 위상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 단일통화 움직임이 생기면서부터다.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는 기존의 엔화나 위안화보다 새로운 단일통화를 도입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한국과 일본,중국이 중심이 돼 논의해왔다. 유로화를 모델로 한 '아시아판 유로화' 도입 방안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온 상태다.

하지만 이 방안은 유럽에 비해 아시아의 경우 역내 국가 간 경제력 격차가 너무 크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경제수렴조건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 속에서 1990년대 미국의 약(弱)달러 정책이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됨에 따라 이 지역에 속한 국가 간 공동 대응 차원에서 새로운 아시아 단일통화인 '엔민비'를 도입하자는 방안이 제기돼 주목됐었다. 엔민비(Yenminbi)란 일본 엔화의 'Yen'과 중국 위안화인 'Renminbi(人民幣)'의 합성어다.

어느 정도 여건도 충족돼 있었다. 경상거래에서 아시아 국가 간 교역은 중국과 일본이 양대 중심국이다. 자본거래에서도 엔화와 위안화 자금을 차입해 쓰는 아시아 국가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당시 엔민비 도입방안이 의외로 빨리 진전될 것으로 관측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시아에 국한되던 위안화 위상이 글로벌 차원으로 격상된 계기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다. 이 일을 계기로 달러화 약세가 예상됨에 따라 중국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삼자고 주장했다. 위안화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달러화 위상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 지난해 4월 이후 중국이 주도가 돼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BRICs) 자체적으로 공동통화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다. 브릭스 간 경제의존도와 단기간에 유로화와 같은 단일통화를 도입하기가 어려운 현실 등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위안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인프라 면에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삼으려는 중국의 작업은 의외로 빨리 진행됐다. 다른 어떤 수단보다 위기 때일수록 위안화로 결속시키는 힘이 강한 통화스와프 협정은 한국 등 인접국은 물론 동유럽의 벨라루시,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까지 확대됐다.

또 무역결제를 위안화로 가져가는 노력은 홍콩과의 교역에서 실현시켰고 러시아,인도 등과도 협정을 맺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가장 주력한 자원개발에 있어서도 모든 결제는 위안화로 통일시켜 나갔다. 인민은행이 달러 페그제 포기의사를 밝히자마자 달러화와 위안화 간 '그랜드 바겐'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곧 바로 대두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변수는 많지만 1980년대 중반 달러화와 엔화 간에 맺은 플라자 협정과 같은 그랜드 바겐이 달러화와 위안화 간에 재현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는 낮다. 양국이 용인하기 어렵고 바라지도 않는 사안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 발행국인 미국에 대한 최대 채권투자국이 중국인 현실에서 대폭적인 달러화 절하와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는 '그랜드 바겐'은 양국에 피해를 가져다 주는 네거티브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러 페그제 포기를 계기로 양국 간 마찰이 완화되면서 앞으로 국제통화질서에 플라자 체제와 같은 그랜드 바겐 시대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1980년대 중반과 달리 명시적이기보다는 묵시적으로, 위안화 대비 달러화 약세를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수정된 형태'의 그랜드 바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에 맞춰 위안화도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