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4일 노동부와 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노 · 사 · 정 합의를 이룬 이후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경제계는 "한나라당 수정안이 확정될 경우 노사 합의로 전임자를 두지 않아온 기업들까지 사측 부담으로 전임자를 운영해야 할 판"이라며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시키는 조치가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 개정안이 더 문제"

한나라당 개정안은 기존 노 · 사 · 정 합의 사항인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는 게 경제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 24조3항은 '노조 전임자는 시행령으로 정해진 통상적 노조 관리 업무,사용자와의 협의 · 교섭,고충처리,산업안전 등의 활동을 할 때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초 노 · 사 · 정은 전임자 임금 지급을 전면 금지하되 '사용자와의 협의 · 교섭,고충처리,산업안전 등의 활동' 등에 쓰인 시간만 임금을 지급하는 타임오프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한나라당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노조의 상급단체 파견이나 심지어 쟁의행위도 유급 업무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더 나아가 24조3항 중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를 '노조업무'로 수정하는 한편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계 "문 닫으란 말이냐"

재계는 "한나라당 개정안이 노조 전임자의 임금 보전을 법으로 명시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하고 있다. 1987년부터 줄곧 파업에 시달려 온 현대자동차그룹은 전투적인 노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당초 합의안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측은 "2006년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법을 3년간 유예하면서 노사 자율로 전임자 급여 지급 규모를 축소하도록 했지만 전임자 수가 오히려 급증했다"며 "이런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전임자 급여 지원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명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문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기 시화공단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T사 대표는 "타임오프제 허용 범위에 '통상적인 노동조합 업무'를 포함시키면 노조 전임자의 상급단체 파견이나 동조파업 등 정치적 활동에까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부 노조도 당초 합의안 취지가 퇴색한 데 대해 반대하고 있다. 관행대로 사측으로부터 급여를 받을 경우 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서다.

◆"전임자 96%가 통상 이상 임금"

노조 전임자들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높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그 수도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안정적인 고임금 구조가 갈수록 전임자 수를 늘리도록 만드는 배경이란 설명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노총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 등 총 362곳을 조사한 결과 노조 전임자의 급여가 통상임금보다 적은 곳은 단 4.4%에 불과했다. 또 조합원 수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통상임금보다 적게 받는 전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임자가 되면 초과근무 및 주말특근 수당까지 모두 챙길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 전임자가 노사 간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보다 안정적인 급여 지원이 보장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투쟁을 선동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그 수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5~10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조재길/고경봉/이관우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