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고문 "금융위기 초래 월가 탐욕 과도"

"정부가 큰 건물만 짓는다고 아시아의 금융센터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은행(IB) 사업은 신뢰(Confidence)의 문제이고 네트워크(Network)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또 한국은 채권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월가에 진출해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투자업체를 설립해 운영했던 `월가 진출 1세대'가 한국 금융산업에 대해 이런 조언을 내놓았다.

주인공은 금융투자업체 '시트(Sit) 인베스트먼트 어소시에이츠'의 김병수(金秉洙.73.앤드류 킴) 고문.
한미커뮤니티재단(KACF)이 21일 뉴욕 맨해튼에서 개최한 연례만찬에서 '자랑스러운 기업인상'을 수상한 김 고문은 기자와 만나 약 40년에 걸친 월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의 금융위기와 한국금융산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특히 한국 금융산업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채권시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안전한 자금조달 시장임에도 한국에서는 채권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해 금융산업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한국은 채권시장이 약하기 때문에 대개 은행 대출이나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면서 "어떤 이들은 주식이 금융의 전부인 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작년 금융위기 발발 시점에 국내 금융기관들이 리먼 브러더스 등 월가의 대형 금융업체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에 대해 "인수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서 인수 뒤 인력들이 대부분 빠져나가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 금융당국이 월가의 복잡한 파생금융상품과 과도한 차입(레버리지)을 규제했어야 했다면서 은행과 증권을 분리해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고문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월가의 과도한 차입과 탐욕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면서 "금융당국은 월가의 차입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될 때 제동을 걸었어야 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시장을 규제하면 안 된다는 원칙만 고수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서울대 상대를 다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코넬대에서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63년부터 미 금융권에서 근무한 '월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당시 F.I.듀폰앤컴퍼니라는 월가의 증권회사에서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월가 생활을 시작한 뒤 1969년엔 한국인 최초로 공인 재무분석사(CFA)를 취득했고 1989년엔 시트 인베스트먼트와 합작으로 '시트/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하기도 했다.

김 고문은 월가 진출을 희망하는 젊은 학생들에게 MBA를 마치고 대형 은행의 인턴으로 들어가 훈련을 받고 나서 소형 투자업체(부티크)로 옮겨 경력을 쌓는 코스가 유망하다고 추천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실력뿐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서려면 실력을 쌓는 것과 함께 인적 교류를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손자들에게 실력을 쌓는 것뿐 아니라 누구와 만나고 어울리느냐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