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돌파를 위한 경기부양 공조가 시험대에 올랐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통화전쟁이 벌어지면서 공조 움직임에 분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이 수출 주도 경기회복을 떠받치기 위해 달러 약세와의 전쟁을 치르자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수출 주도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유로존 16개국 재무장관,약달러 우려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내건 미국의 용인과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일부 국가의 움직임이 맞물려 촉발된 약달러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수익을 노리고 싼 달러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것)를 노린 핫머니(단기 투기자금)까지 가세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유럽은 달러 약세에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위안화 절상 압력에는 미국과 공조하고 있다. 적과 아군이 혼전하는 모습이다. 올 들어 미 달러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선 6.9%,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선 11.9% 하락하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다. 룩셈부르크에서 19일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달러약세 우려가 표명된 배경이다.

AP통신은 유로화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독일 프랑스 등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고 있는 데다 약달러가 국제유가 등 상품가격 상승 또한 부추겨 유로존 국가들의 인플레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월 유로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23% 급감했다.

◆달러패권 도전의 부메랑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기축통화 체제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달러 약세로 이어지고 이는 세계 주요국이 보유한 달러자산 가치 하락과 인플레 우려를 촉발시키고 있다.

남미 좌파국가들이 공동통화 수크레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나 중국과 러시아 등이 무역거래에 자국 통화를 사용키로 한 것 등이 약달러에 불을 지핀 것이다. 특히 경기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딘 미국과 일본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경기회복이 빠른 아시아에서 금리 인상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핫머니들이 달러 약세에 베팅,통화전쟁은 확전일로다.

◆또 다른 뇌관 위안화

통화전쟁의 또 다른 핵심 뇌관은 중국 위안화다. 미국이 강조하는 글로벌 불균형 해소란 다름 아닌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수출국들의 무역흑자를 줄이는 것이다.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미국과 '환율은 주권의 영역'이라는 중국 간 오랜 기싸움은 최근 중국과 유럽으로도 확전되는 양상이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존 재무장관들로 구성된 유로그룹의 장 클로드 융커 의장,조아긴 알무니아 유럽연합(EU) 통화담당 집행위원과 함께 연내 중국을 방문,환율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 환율을 달러화에 사실상 고정시킨 탓에 유로화 가치가 위안화 대비로도 2월 이후 19% 이상 오른 탓이다.

위안화 절상 압력이 높아지면서 지난 19일 상하이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위안화 1년물 선물 환율은 14개월 만에 최저치(위안화 강세)인 달러당 6.5930위안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실제 위안화 현물 환율은 요지부동이다. 작년 7월 이후 달러당 6.82~6.83위안에서 사실상 고정된 상태다. 오히려 중국은 20일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위안화 환율을 통해 유로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무려 0.78% 떨어뜨렸다.

중국 언론들은 "위안화 절상 압력의 본질은 보호무역주의"라며 "미국과 유럽이 무역제재를 위안화 절상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선 위안화 절상 압력에 따른 무역전쟁을 경고하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오광진/김미희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