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한 달 만에 180도 바뀌었다. 지난달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선 올해 중이라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처럼 강한 톤으로 발언했으나 9일엔 올 4분기 이후 경제상황까지 봐야겠다고 돌아섰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연내 금리인상 전망이 쑥 들어가고 빨라야 내년 1분기쯤 검토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 총재가 이처럼 유연하게 바뀐 것은 무엇보다 향후 경제사정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최근 산업활동동향이 안 좋게 나타나고 미국에서도 예상보다 경기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이 총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8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기준 -1.3%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취업자수도 지난 7월 7만6000명 감소(1년 전 대비)에서 8월엔 3000명 증가세로 바뀌었으나 공공부문 일자리가 32만여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에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도 실업률이 9.8%로 26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고 상업용 부동산 문제도 해결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달러 약세로 금가격이 폭등하는 등 국제 원자재가격도 안정되지 않고 있어 우리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 총재가 3분기 성장률이 예상외로 높더라도 체감지표와는 다른 착시효과일 수 있으며 4분기엔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감안한 것이다.

더불어 부동산시장의 흐름이 최근 들어 바뀌어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명분이 이전보다 약해진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 스스로도 지난달 중순 이후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금융감독원이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강화한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성이 커졌다. 이 총재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산에 대해 강하게 경계하는 모습을 나타냈지만 이달 들어선 통화정책의 우선순위가 부동산이 아니라 물가와 경제상황에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이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이후 이 총재도 책임의식을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내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위기 때 내린 금리를 올리고 풀어놓은 돈을 회수하는 정책)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터인데 의장국 내부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국제회의에서 "국제공조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며 한국에서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는데 통화당국이 느닷없이 기준금리를 올려버리면 나라꼴이 우습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과 시장에선 이 총재의 달라진 발언을 토대로 일단 연내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유병규 상무는 "국내외에서 경제회복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은 일러야 내년 1분기여서 금리인상 여건은 그때쯤이나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 총재의 이번 기자회견 메시지는 명백히 올해 중 금리인상이 없다는 것"이라며 "경제상황에 따라 내년 1분기에도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