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대북지원 재개로 쌀 재고 소진해야"
`쌀 소비 확대 근본대책 마련 시급' 지적


쌀 재고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 햅쌀 출하시기까지 다가와 쌀값 폭락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풍작' 예상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이 패고 있다.

농민들은 전국규탄대회까지 열며 쌀 대북지원 재개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고 정부도 쌀 10만t 추가매입과 올해 수확기 공공비축미 37만t 확보를 약속했지만 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 난감한 실정이다.

◇쌓이는 재고 쌀..농협만 20만t
8월말 현재 농협이 가진 쌀 재고량은 20만8천t(정곡)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11만t에 비해 무려 88.7%나 늘어났으며 충남.북과 전남을 제외하고는 모두 2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지역별로 작년 8월과 올해 8월 재고량을 비교해 보면 경기는 1만4천t에서 3만3천t으로 증가율이 143%에 달했으며 강원은 2천t에서 1만t으로 무려 341%나 급증했다.

전북은 1만8천t에서 3만8천t으로 109% 증가했고 경북과 경남도 9천t에서 1만9천t으로, 8천t에서 1만6천t으로 각각 111%, 100% 늘어났다.

재고량이 가장 많은 전남은 2만9천t에서 4만5천t으로 55% 증가했으며 충북과 충남도 1만t에서 1만2천t으로, 1만7천t에서 2만8천t으로 각각 25%, 62% 불어났다.

여기에 민간보유 분량까지 합하면 쌀 재고량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쌀 재고량 급증은 쌀밥 대신 잡곡밥을 선호하고 밥을 빵으로 대체하는 등 식생활 패턴 변화에 따른 소비 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99년 96.9kg이었으나 매년 감소해 지난해 75.8kg까지 줄어들었으며 올해는 74.3kg으로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 농사 '풍작'..쌀값은 하락
쌀 재고가 줄지 않으면서 오히려 '풍년'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올해 벼 작황은 2개월간의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최근 맑은 날씨와 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벼 이삭과 알곡의 생육이 좋은 상태로 '대풍'이었던 작년보다 약간 줄거나 평년 수준의 수확이 예상된다.

경기지역의 올해 쌀 수확 예상량은 47만5천t으로 지난해 51만t보다 다소 적고, 전남은 평년 수준인 90만t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북은 지난해와 비슷한 75만t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이며 충남도 평년작인 86만5천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또 경남은 43만3천t으로 지난해(47만2천600t)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강원지역도 18만7천t으로 소폭 감소가 예상된다.

넘치는 재고 쌀에 풍년까지 겹쳐 시중에 쌀이 넘쳐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산지 쌀값 추락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쌀 가격은 보통 수확기 이후 하락했다가 점차 높아지지만, 올해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년 11월 16만2천원(80kg.정곡)선으로 예년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던 전국 평균 쌀 가격이 지난 5월 15만9천원으로 작년보다 떨어진 이후 계속 하락 추세에 있다.

경기 여주.이천쌀(10㎏)은 현재 2만9천~3만1천원으로 지난해(3만3천원)보다 떨어졌으며 다른 경기미는 작년 평균 2만5천원보다 최고 2천원가량 하락했다.

경남은 지난해 가을 16만2천400원(80kg기준)에서 최근 15만7천900원대로 떨어졌으며 충남도 작년 9월 4만5천700원(20kg기준)에서 현재는 4만2천원으로 떨어졌다.

전북은 14만원대(80kg)로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벼는 40kg당 4만3천원으로 지난해보다 1만원 이상 낮아졌고 강원도 올해 초 16만200원(80㎏)에서 현재 15만7천원으로 5천원 가량 떨어졌다.

◇농민단체 "대북 쌀 지원으로 재고 소진해야!"
쌀 재고 증가에 대한 우려는 올 초부터 농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계속 제기됐고 정부도 10만t 추가매입과 올 수확기 37만t 매입을 약속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잉여물량 매입으로 쌀 가격의 하락 추세가 진정되고 올해 가을 수확기 쌀 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정부대책이 미흡하다며 더욱 적극적인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시장개입 최소화' '시장왜곡' 논리를 앞세워 쌀 문제를 그동안 수수방관했다고 비난하고 정부의 쌀 매입 방침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2008년산 쌀 10만t 매입 대책은 지역농협의 재고물량을 농협중앙회 창고로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땜질식 처방을 그만두고 그동안 쌀값 안정에 기여했으나 지난해 중단된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는 동시에 이를 법제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 장명진 사무처장은 "그동안 정부는 해마다 40만t의 쌀을 북한에 지원해 왔는데 지난해부터 쌀 지원이 끊기면서 엄청난 재고가 쌓이기 시작해 쌀값 하락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하반기 농민대회와 쌀 출하 거부, 농민 총궐기 등 강력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압력을 넣고 있다.

또 국민의 식생활 패턴이 바뀌는 가운데 쌀 재고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쌀 소비를 늘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사회단체의 쌀 소비 촉진운동이나 대북지원 등도 재고량을 줄이는 효과는 있으나 한계가 있는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
이런 가운데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쌀 재배를 확대하고 해외로 판로를 넓히는 것도 쌀 재고를 소진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정부 매입량 확대가,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쌀 재배 등을 통한 고품질 쌀 생산이 쌀 재고량을 줄이고 농민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대전.무안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b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