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게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힌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지난 3일 오후 심의를 시작해 이날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징계수위를 둘러싸고 마라톤 공방을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이다.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 조치는 오는 9일 열릴 금융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금융당국이 은행장급 인사에 대해 직무정지 수준의 중징계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금융계 주변에서 상당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위험한 투자 결정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힌 만큼 마땅히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투자손실을 사후에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황 회장 측의 재심 청구나 법적 대응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2005~2007년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15억8000만달러를 투자할 때 위험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는 등 관련 법규를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 인해 우리은행이 투자액의 90%에 해당하는 1조62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황 회장이 유동성이 보장되지 않는 CDO 투자에 나선 것은 건전성을 크게 해친 행위라고 본 것이다. 또 2006년 투자금융(IB) 담당 부행장의 경영목표를 연초보다 1조원 높여 사실상 CDO 투자를 부추긴 것도 '경영목표는 이사회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은행법 23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은행에 큰 손실을 입힌 책임에서 황 회장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우리은행은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만큼 더욱 리스크 관리에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황 회장 측이 "어느 국가에서도 금융사의 투자가 손실이 났다고 최고경영자에게 사후 책임을 묻는 사례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퇴임 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해 손실이 발생한 것을 나중에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한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그릇된 투자판단을 사전에 걸러내 적절한 감독조치를 하지 못한 당국의 잘못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사후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어떤 금융사 CEO들이 적극적인 투자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나온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금융사 경영자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확실한 투자책임 가이드라인을 정립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