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앞다퉈 유동성을 쏟아부은 지 1년여 만에 출구전략(Exit Strategy)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경기회복세가 빠른 중국과 호주에 이어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에서도 통화팽창 정책(양적완화 정책)의 기조변화를 시사했다. 출구전략은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회수해 인플레이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은 우선 경기회복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금리인상보다는 공개시장 조작을 통한 유동성 공급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양적완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확대라는 비상조치에서 발을 뺀 뒤 △유동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그 다음에 점차 회수에 나서는 식의 미세 조정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도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2차 슈퍼버블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어 금리인상은 경기회복 속도에 따라 연말 이후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2일 국채 매입 시한을 10월 말로 제시하는 등 통화정책 기조변화의 뜻을 내비쳤다. 월가에서는 FRB가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회복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을 점차 거둬들이는 출구전략 신호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FRB의 국채 매입 시한 제시는 시중 유동성을 회수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출구전략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유동성 지원을 위한 비상조치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FTN파이낸셜의 크리스토퍼 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RB가 유동성 프로그램이 경제 안정과 투자 심리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조성할 정도로 긴박하게 유동성을 거둬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앞서 유럽은 유동성을 흡수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1일 정기 주간 재융자(리파이낸싱) 방식을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은행들이 자금을 ECB에 예탁하게 함으로써 유동성 흡수에 나섰다. 흡수된 자금은 총 736억유로(1040억달러)로 각국 은행들이 요구하는 지급준비율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규모인 320억유로보다 훨씬 많았다. ECB는 "단기 금융시장에서 높은 유동성 불균형이 보이고 있다"고 언급,유동성이 과도하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중국은 이미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불어난 유동성 관리를 위한 미세 조정에 착수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금융사의 7월 신규 대출은 3559억위안으로 전달(1조5300억위안)의 23% 수준에 그쳤다. 중국 정부는 적당하게 느슨한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되풀이해 밝히고 있지만 시장은 통화정책 조정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올 들어 70% 이상 급등한 상하이종합지수가 이달 들어선 10% 떨어진 게 이를 보여준다. 중국 언론들은 올 상반기 7조3700억위안에 달했던 은행의 신규 대출이 하반기 3조위안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호주는 가장 공격적인 출구전략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글렌 스티븐스 호주중앙은행(RBA) 총재는 최근 "경기가 지속가능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신호가 포착된다면 일정 시점에 통화 정책을 중립으로 수정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주의 경기 회복세와 성장 전망치 상향 등을 들어 "주요국 가운데 호주가 지난 1년간의 글로벌 경기침체가 종료되면서 금리를 올리는 첫 번째 나라가 될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