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목기와 목재 납골함 제조업체인 고려공예는 3대째 가업을 계승해 온 '장인기업'이다. 112년째 목기 한우물만 파고 있다. 이 회사의 기술력은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2002년에는 전통목기 기능전승가로 선정됐으며 2007년에는 은이 함유된 옷 도료를 개발해 발명특허를 받았다.

이 회사의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좋은 물건'이란 평판만으로는 대량 생산하는 도자기나 플라스틱 그릇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중국산 목기 수입이 늘면서 국산 전통목기 시장이 쪼그라든 것도 악재였다. 2007년에는 설상가상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화재 사고까지 발생했다. 고려공예 임직원들은 30년이 넘은 원목 재료와 창고에 쌓여 있던 목기 재고가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적자를 메우며 하루하루 버티던 기업이 생산기반까지 잃었으니 남은 건 '폐업'뿐이라고 여겼다.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속 경영자문봉사단원들이었다.

봉사단에 소속된 전직 대기업 최고 경영진은 고려공예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제품 포트폴리오와 시장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전통목기를 상급,중급,하급 제품으로 나누고 전통적인 거래처 이외의 다양한 판매 루트를 뚫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도출했다.

폐업 위기에 놓여 있던 고려공예는 전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문을 통해 '마케팅 기업'으로 변신했다. 각 지역의 화장장을 대상으로 유골함 판촉활동에 나서고 다양한 샘플을 현장에 배치했다. 판매루트도 다양화했다. 대구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부를 통해 시설 내부의 판매장을 직영매장으로 확보했으며 그릇 유통업체들을 통한 위탁판매 물량도 늘렸다. 김용오 고려공예 공동대표는 "9월부터 미국과 일본으로 전통목기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을 만큼 사세를 회복했다"며 "한국 전통목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전경련 경영자문봉사단은 고려공예처럼 기술은 뛰어나지만 사업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2004년 7월 꾸려졌다. 삼성,LG,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서 오랜 경륜을 쌓은 전직 CEO들이 자문을 요청한 중소기업을 방문,경영 노하우를 알려준다. 등록돼 있는 자문위원은 이필곤 전 삼성물산 대표,이노종 전 SK그룹 연수원장,유지현 전 해태유통 대표,백갑종 전 농수산홈쇼핑 대표,김영수 전 LG스포츠 대표 등 93명이다. 이 중 20여명이 현장 자문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무와 관련된 문제가 있는 곳에는 재무통 CEO가,마케팅이 취약한 곳에는 마케터형 CEO가 파견된다. 이들의 역할은 자문과 컨설팅만이 아니다. 현직에 있을 때 구축했던 정보망과 인맥을 활용,이자가 저렴한 대출을 알선해 주고 거래선과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자문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다. 고려공예도 2007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자문을 구했다. 1회성 자문만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자문기간을 넉넉하게 잡았다는 게 전경련 측 설명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영자문을 받은 기업들의 대부분이 뚜렷한 체질개선 성과를 내고 있다"며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봉사단원으로 활동 중인 전직 CEO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다.

전경련의 중소기업 자문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와 엇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는 대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안식년 휴가를 보내고 있거나 은퇴한 후 보좌역,고문 등으로 물러난 임원들을 중심으로 '협력사 경영지원 컨설팅단'을 구성했다. 이 조직은 올해 초부터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