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의 새 고액권인 5만원권이 5천만장 넘게 풀렸지만 백화점이나 시장 등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데다 고액권 분실과 위조지폐에 대한 우려 등으로 여전히 1만원권과 자기앞수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마장이나 카지노 등에서는 5만원권이 비교적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은행들은 아직 5만원권에 대한 인지도가 낮지만, 위폐 등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고 5만원권 입출금이 가능한 자동화기기(ATM.CD)가 확대되면 이 고액권의 수표 대체 효과도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 은행 창구 첫날만 '반짝'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에서 개인 고객에게 공급된 5만원권 규모는 지난달 23일 4억원에 달했지만 24일 이후로는 하루 5천만원 정도만 공급되고 있다.

5만원권 유통 첫날인 지난달 23일에는 신권에 대한 호기심으로 5만원권을 구하기 위한 고객으로 은행 창구가 붐볐지만, 이후로는 5만원권을 찾는 고객이 급격히 줄었다.

기업에도 비슷한 규모가 공급됐지만 대부분 발행 첫째 주인 지난주에 집중됐다.

기업들이 직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신권 교환을 위해 지난주 5만원권을 많이 찾았지만, 이번 주에는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이달 2일까지 우리은행 각 지역 센터에서 지점을 통해 시중에 배포한 5만원권은 935억원에 달하지만, 이중 영업점을 거쳐 지역 센터로 되돌아온 금액은 15억원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5만원권 상당액이 영업점 금고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영업부 길재훈 과장은 "유통 첫날에는 고객들이 보관하려는 목적으로 5만원권을 많이 찾았지만, 이후로는 수요가 많이 줄었다"며 "아직 5만원권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시장.백화점서 유통 미미
5만원권 수요가 주춤하면서 음식점이나 시장 등에서 잘 유통되지 않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최선영(43.여)씨는 "5만원권을 한 장도 구경하지 못했다"며 "대부분 카드로 계산하거나 그냥 1만원권으로 낸다"고 말했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에서도 5만원권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고 있다.

대형 백화점 A사의 한 지점은 하루평균 현금 결제액 9천만원 가운데 2.8%인 250만원만이 5만원권으로 결제됐다.

A사 관계자는 "영업 후 정산해보면 5만원권은 지점당 하루 평균 50장 수준"이라며 "발행 초기와 비슷한 수준이고 증가세를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마트에도 아직 5만원권이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달 24일 532장이 들어왔고 25일 2천286장, 26일 3천419장, 27일 4천828장, 28일 7천870장으로 늘었으며 현재는 1만장 가량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백화점 B사 관계자는 "5만원권 위폐논란 등이 일면서 초반에 계산하는 직원들이 일일이 관리자들에게 들고 와 확인을 받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객이 불편을 겪는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형 백화점에서 그럴 정도였으니 작은 가게에서는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 카드 사용 선호..위폐.불량 우려도
5만원권 유통이 활발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 결제 때 1만원권을 사용하는 데다 2만~3만원 이상 고액은 신용카드를 통해 결제하는 관행이 보편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스름돈 교환의 불편도 5만원권 유통에 장애가 되고 있다.

슈퍼마켓 주인 정충식(66)씨는 "얼마전 한 손님이 과자와 음료수 1천500원어치를 사면서 5만원권을 내는 바람에 같이 거스름돈을 세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들도 잔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아 5만원권 대신 카드 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5만원이 발행된 지 1주일 만에 5만원권 위조범이 경찰에 검거되고 입체형 부분노출은선 끝 부분의 앞뒷면 벌어짐 현상이 발생하면서 위폐와 불량에 대한 우려감이 커진 점도 5만원권 유통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수입향수 가게 김영분(67.여)씨는 "지폐에 하자가 있다거나 위조지폐가 나왔다는 소식 때문에 불안해서 5만원권을 받기 싫지만 손님들이 줘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4장을 받았다"며 "오래 갖고 있기 싫어서 금방 처분해 버렸다"고 말했다.

◇ 수표 대체 효과 미미
5만원권이 시중에서 잘 유통되지 않으면서 10만원 자기앞수표 대체 효과도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달 23일 이후 이달 2일까지 8영업일 간 농협의 자기앞수표 발행량은 550만9천744장으로 5월 19일 이후 8영업일간 발행량 543만7천607장보다 7만2천137장 증가했다.

기업은행의 자기앞수표 발행량은 지난달 23일 이후 8영업일 간 168만121장으로 5월25일 이후 8영업일 간 발행량보다 28만6천595장 줄었으며 외환은행은 85만6천321장으로 5월 22일 이후 8영업일간 발행량보다 14만6천592장 감소하는 데 그쳤다.

많은 상인은 분실하더라도 추적할 수 있는 점과 10만원으로 딱 떨어지는 점 등 때문에 5만원권 지폐보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선호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100만원을 인출하면서 5만원권으로 달라는 고객보다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0장을 달라고 하는 고객이 많다"며 "5만원권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5만원권과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섞어주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1만원권에 대한 대체 효과는 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시중에 풀려 있는 1만원권 26조∼27조원 가운데 40% 정도가 5만 원권으로 대체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갈 길이 멀다.

◇ 카지노.경마장서 유통 활발
신용카드 사용이 금지된 경마장과 카지노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유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행성 확산에 대한 우려 등으로 경마장과 카지노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강원랜드 내에 있는 신한은행 사북지점은 5만원권을 50억 원어치 공급했다.

본점 영업부의 공급액 9억원을 5배 웃도는 규모다.

농협 영업점 중에서 지역별 센터로 5만원권을 반납한 지점은 마사회 지점이 거의 유일한 실정이다.

농협 마사회지점 이홍준 과장은 "지난주 창구에서 받은 지폐 약 50억원 가운데 2억원이 5만원권이었다"며 "경마장 특성상 현금으로만 거래하기 때문에 자동화기기에서 5만원권 입출금이 가능해지면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5만원권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고 자동화기기가 확대되면 유통업계 등에서도 5만원권의 유통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최윤정 최현석 홍정규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