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올림픽대로를 따라 달리다 경기 하남시 미사동으로 접어들면 주변 풍광이 확 달라진다. 빽빽하던 아파트와 빌딩숲이 고즈넉한 카페촌으로 바뀐다. 조정경기장 인근의 한 카페 겸 모터바이크 매장에서 김경섭 BL차퍼스 사장을 최근 만났다. 검붉은 피부에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내려왔고 커다란 목걸이를 찼다. 4~5년 전부터 머리를 길렀다고 했다.

김 사장은 "수입가격이 대당 1억원을 넘던 명품 바이크를 국내에서 직접 제작해 단가를 절반 이하로 낮췄다"며 "올해 30~50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매장을 가득 메운 BL차퍼스의 모터바이크는 한 눈에 봐도 간단치 않았다. 바이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할리 데이비슨과도 달랐다.

"미국에서 할리에 싫증내던 사람들이 할리를 개조해서 타던 게 차퍼 문화의 시작이죠.별도의 수납공간 없이 오로지 엔진과 바퀴 만으로 구성된 게 특징입니다. 단순미를 추구하는 수제 바이크라고 할까요?"

뒷바퀴 크기는 250~360㎜에 달했다. 단면폭이 일반 승용차의 광폭 타이어보다도 크다. 배기량은 준중형 승용차에 맞먹는 1600~2000cc.최고 12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차퍼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0년께다. 김 사장은 "당시 고가에 수입되던 차퍼의 가격 거품을 어떻게 뺄 것이냐가 최대 관심이었다"고 전했다.

BL차퍼스는 작년 5월부터 자사 제품을 경기 이천공장에서 전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엔진과 같은 일부 부품만 미국 등으로부터 수입할 뿐 대부분 국산 자재를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보급형 차퍼(BL-518)의 가격을 3300만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에어클리너 등 각종 옵션을 합해도 대당 4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차퍼는 조립형과 주문생산형(커스텀)으로 나뉜다. 이 중 주문생산형 차퍼는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다. 만드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안전시험까지 통과하는 데 보통 5~6개월이 소요된다. 때문에 주문생산형 차퍼 가격은 8000만~9000만원에 이른다.

김 사장은 "종전에는 할리만 타도 자신만의 멋을 낼 수 있었는데,지금은 차퍼로 고급 모터바이크 문화가 넘어가고 있다"며 "차퍼 중에서도 개성이 강한 주문생산형 차퍼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차퍼의 주 소비층은 3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이다. 직장인보다 자영업자가 많다. 그는 "사업상 필요로 벤츠를 구매하는 사람은 있어도,이런 목적으로 차퍼를 사는 사람은 없다"며 "온전히 자기 만족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는 진짜 바이크 마니아들이 우리 고객"이라고 자랑했다.

BL차퍼스의 마케팅 전략은 다소 독특하다. 영업점을 하남 미사동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등 2곳에 두고 있는데 미사동은 카페,신사동은 이탈리아 식당을 겸하고 있다. 덕분에 바이크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거리감도 좁힐 수 있게 됐다. 각 매장에선 차와 음식을 판매하며 운영비를 절감하고 있다. BL차퍼스 로고가 새겨진 청바지와 패치,모자 등도 팔아 부수입을 올린다.

김 사장은 향후 대중적인 바이크를 대량 생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배기량이 125~350cc이면서도 BL차퍼스의 독특한 디자인을 입힌 제품을 내년 하반기에 출시할 계획이다.

"요즘 중소형 모터바이크 시장에선 저가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성능과 디자인을 차별화해서 중국에 역수출할 겁니다. 한국인의 손재주면 못할 게 없잖습니까?"



하남=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