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각국 정상들이 연일 '보호주의 배격'을 외치고 있지만, 이는 공약(空約)'에 그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 보도했다.

대외 석상에서는 하나같이 무역장벽 철폐, 도하 라운드 협상 타결을 주창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연일 보호주의적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주의와 관련해 '말 따로, 행동 따로' 양상을 보이는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지금은 보호주의적 움직임을 보일 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보호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지만, 미 의회는 7천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공공 사업을 벌일 때는 미국산 철강 제품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조항을 포함시켰다.

미국 정부는 또 구제금융을 받는 금융기관들의 외국인 직원 채용을 규제하기로 했으며, 최근에는 멕시코 트럭의 미국 고속도로 통행허용 조치를 돌연 취소해 논란을 빚었다.

'새 기축통화 도입'을 주장하며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에 도전장을 낸 중국 역시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미국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기업들의 수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섬유, 철강, 유화 , 전자 분야에 대한 수출세 환급분을 인상한다고 발표했으며, 군소업체들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자국 주스업체 후이위안(匯源)이 코카콜라에 인수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보호주의는 마약과도 같다고 생각한다"면서 보호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국내에서 더 많은 기업에 재정지원 혜택을 제공하고, 수입제품에 대한 덤핑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고, 중앙은행의 루블화(貨) 방어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은 러시아 역시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역시 세계 무역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는 각국 지도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피터 서덜랜드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회장은 "G20 정상들이 보호주의의 위험을 인지하고 자유무역과 도하라운드 협상 타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해도, 그들이 국내에서 보호주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외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보호주의에 대한 '공약'이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 역시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G20 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정치적 언급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사안으로 탈바꿈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우리는 이미 보호주의적 움직임이 확대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것을 사라', '저것을 사라'는 규정(원산지 규정), '특정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서는 안된다는 규정' 등이 그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이 경기부양책, 구제금융 등을 빙자해 기만적인 보호주의 조치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계은행이 국제 무역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앞으로 50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은행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G20 소속 17개 국가가 지난해 11월 이후 새로 도입한 무역제한조치는 모두 47건에 이른다.

(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rainmaker@yna.co.kr